‘···그래도 첫 마음은 잊지 말자고 또박또박 백지위에 만년필로 쓰는 밤, 어둡고 흐린 그림자들 추억처럼 지나가는 창문을 때리며 퍼붓는 주먹 눈, 눈발 속에 소주병을 든 김종삼(金宗三)이 걸어와 불쑥, 언 손을 내민다. 어, 추워 오늘 같은 밤에 무슨 빌어먹을 짓이야, 술 한 잔하고 뒷산 지붕도 없는 까치집에 나뭇잎이라도 몇 장 덮어줘, 그게 시(詩)야!’
전동균의 시 ‘주먹 눈’이다. 시처럼 눈이 퍼붓는 아침, 삼성산에 올랐다. 유난히도 춥고 눈 잦은 올 겨울, 설풍에 묻어오는 상념이 사색의 혈관을 타고 자꾸만 이어진다. 길은 생각의 산파요 예언자 같다. 인생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지. 석구상과 한우물을 지나 다다른 삼막사 명부전에서 절로 두 손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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