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 엄마, 어디 가요?”, “마트에 가요.” 이처럼 ‘마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너무나 자주 쓰는 말이어서 아무도 이 말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이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말인지 생각해 보자.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일단 외래어, 즉 외국어에서 들어왔지만 이미 우리말화 된 말은 아니라는 얘기다.
사전에도 없는 국적 불명의 단어
그러면 ‘마트’(mart)는 아직 우리말화 되지 않은 외국어인가? 물론 영어사전에 나오는 영어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위의 대화에서처럼 독립적인 보통명사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즉 세계적인 기업인 월마트(Wal-mart)나 케이마트(K-mart)처럼 거의 전적으로 다른 고유명사를 만들 때 참여하는 ‘어근’으로 쓰인다. 월마트와 케이마트는 각각 창업자인 월튼(Sam Walton)과 크레스기(Sebastian S. Kresge)의 첫 음절과 첫 글자를 따고 뒤에 마트를 붙여 만든 상점명이다. 그러니까 ‘마트’는 우리말의 ‘상회’ 같은 말이다. ‘○○상회’라고 가게 이름을 지을 때만 쓸 뿐, 결코 “오늘 오후에 상회에 가요”라고는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이런 형태의 할인판매점들을 도입할 때 이들 명칭을 모방하여 ‘○마트’, ‘○○마트’와 같이 지은 이후로 일반 대중들이 이런 범주의 상점들을 ‘마트’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요컨대 본래 영어에서는 우리가 지금 쓰듯이 ‘마트에 간다’라고는 쓰지 않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보통명사처럼 쓴다면 콩글리시가 된다. 내가 지금 콩글리시 자체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와이셔츠’나 ‘호치키스’ 등과 같이 이미 우리말화 되어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콩글리시들은 외래어의 지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사전에도 안 올라 있는 ‘마트’는 제대로 된 영어도 아니면서 국어도 아닌 국적 불명의 단어의 사용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대상이나 개념을 가리키는 어휘가 우리말에 없을 때는 외국어를 차용할 수 있다. ‘파인애플’, ‘커피’가 그렇다. 물론 이런 경우라도 ‘전자우편’처럼 우리말 체계에 순응시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말에 분명히 적당한 어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우월하고 멋있어 보이려는 욕구로 차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모국어의 부족한 어휘를 보충하려는 동기, 표현력을 더욱 풍부하게 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단지 더 유식하게 보이려는 욕구의 표현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자국어로 순화하는 노력 필요해
한 언어 내에 외국어로부터의 차용어를 허용하는 한계치는 언어학자 아제쥬에 의하면 어휘의 15% 정도다. 그래서 프랑스의 한림원이나 캐나다 퀘벡주의 프랑스어 관리청은 이 허용한도를 넘는 차용어의 사용은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프랑스는 1996년에 공공기관과 서비스 영역에서 외국어의 용어와 표현을 반드시 관보에 게재된 프랑스어 용어와 표현으로 대체할 것을 법령화 했다. 전문기술어와 신조어 문제를 협의, 조정하는 총리 직할의 전문용어 및 신조어 총괄위원회에서 이 법안과 관련된 조처를 취한다.
나는 프랑스나 퀘벡처럼 법령으로 언어사용을 규제하는 태도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자국어 보호에 쏟는 열정과 차용 대신 자국어로 순화하려는 노력, 이를 통해 국민들이 순화된 표현을 손쉽게 제공받는 체계, 그리고 언론 등에서 앞장서서 이를 홍보하고 인도하는 문화는 몹시 부럽다. 사실 우리의 언론은 ‘마트’ 같은 말을 이러한 고민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다. 어쩌면 조장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제 국민들이 순화된 용어를 어렵지 않게 접하게 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언론이 이를 홍보하는 문화를 만들자. ‘마트’는 ‘할인점’으로 순화해 써보자!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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