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사건의 저변

임양은 본사 주필 ye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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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인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에 대한 미 당국의 성폭행 미수 등 혐의의 사법 절차엔 반 양키(反 Yankee) 정서가 깔린 것 같다. 뉴욕 경찰이 그를 법원으로 호송하는 과정에 몸 뒤로 수갑을 채운 것이나, 잡범들 속에서 카메라 공세를 받으며 차례를 기다리는 법정 면모는 평소의 그가 아니다. 풀죽은 성추행범 그대로다.

 

IMF는 일찍이 환란을 겪은 적이 있어 생소하지 않다. 이런 국제금융기관의 수장이 당하는 재판 과정은 가히 수모다. 물론 미국 경찰은 연방의회 의원도 불법 시위 등엔 수갑을 채운다. 문제는 칸의 법정 모습까지 드러난 사진 공개의 허용이 인권에 부합되느냐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프랑스가 분개하고 있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수갑 찬 충격적 이미지’ 제하의 기사에서 이를 비난한 각계의 목소릴 실었다. 사회당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라 했고 “야만적 폭력” “용인할 수 없는 잔인한 행위”라는 말이 또한 정치권에서 나왔다.

 

양키는 미국을 깔보는 서구인들 자만심이다. 특히 프랑스가 영국보다 더한다. 원래는 미국 동북부 대서양 연안 뉴햄프셔 등 6개 주의 뉴잉글랜드 원주민이 양키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로 건너간 영국 이주민들이 원주민인 양키를 몰아내고, 식민지를 개척한 것이 미국 독립전쟁의 발원지가 됐다. 남북전쟁 땐 남군이 북군을 조롱하는 말로 썼다.

 

IMF 총재가 파렴치범

 

그러나 지금은 양키란 말을 역설적으로 받아들여 일부러 쓰기도 한다. 예컨대 프로야구 뉴욕양키스 팀이나 양키스타디움 등이다. 뉴욕 자유금융시장엔 유로달러시장에 대응한 양키달러시장이 있다.

 

비록 이렇긴 해도 양키란 말이 미국인에 대한 원초적 비칭인 덴 변함이 없다. 어원은 여러 설이 있어 확인키 어렵다. 아마 뉴잉글랜드에서 쫓겨난 원주민처럼 멍청한 사람이란 의미로 짐작된다. 그러니까 속된 말로 골 빈 사람, 머릿속에 든 것은 없이 폼만 잡는 그런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실제로 말쑥한 양복 차림에 사사건건 잘난 체하는 짓을 두고 양키 스타일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면 추잉껌 씹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기질을 가리켜 양키이즘이라고도 한다.

 

프랑크왕국으로 프랑스 역사가 시작된 것이 5세기다. 이토록 장구한 프랑스가 보는 미국은 겨우 200년이 좀 넘는 풋내기일 뿐만이 아니라 전통문화가 없는 상것들인 것이다. 프랑스가 자유사상과 계몽주의 신문화를 꽃피울 적에 미국은 총잡이가 설쳐대는 황무지였다. 유서 깊은 문화적 정서를 지닌 프랑스 사람들 눈으로는 오늘의 초강대국 미국은 마치 졸부로 보이는 것이다.

 

칸 총재의 혐의 내용에서 피해자인 객실 담당 청소원은 30대 흑인여성이다. 그녀가 빈방으로 알고 들어갔을 적에 그는 공교롭게 샤워를 막 마치고 나오던 참의 알몸이었다. 알몸만 아니었어도, 예의 그런 버릇이 발동 안 됐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객실 마루에서 침실로 침실에서 다시 객실 마루로 끌려다니다 탈출하기까지의 칸의 행위는 몹시 집요했고 거칠었다.

 

그러나 변호사 측 주장은 다르다. 바로 그 시각에 칸은 딸과 점심식사를 함께했다는 것이다. 두 가지로 생각된다. 객실 담당 여종업원이 거짓말 아니면 과장을 했거나, 칸은 딸과 점심을 안 했거나 했다면 점심 직후에 우발적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진실은 더 두고 볼 일이다.

 

반 양키 정서의 앙갚음도

 

미국 법원은 칸 총재가 보석금으로 무려 100만달러를 건 보석 신청에도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거절했다. 하루 방값이 3천달러짜리인 방에서 자다가 구치소 독방 신세가 됐다. 파리행 비행기 1등석에서 이륙 10분 전에 체포된 비행기를 또 언제 타게 될지 예측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 또한 미국인을 내심 양키시했던 프랑스 사람이다. 뿌리가 일천한 양키문화는 부인될 수 없는 미국사회의 열등 의식이다. 이의 앙갚음이 반 양키 정서다. 물론 이에 티를 낼 순 없다. 굳이 프랑스인들의 분노가 아니어도, 칸이 그 같은 미국사회의 정서적 보복을 당하는 느낌이 든다.

 

혐의에 대해선 엄벌해 마땅하다. 이런데도 염려되는 것은 장차 이 같은 문화적 격차가 지구촌 공동체 균열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래학이 내다보는 충돌 현상의 주요 대목이다.  임양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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