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에 산소같은 아줌마 될 것"

만나고 싶었습니다 - 김필례 고양시의회 의장

자신을 몰라본다며 주민센터 여직원의 머리채를 낚아채는 등 폭언과 폭력을 휘둘러 물의를 일으키더니, 의류매장에서 옷을 산 다음 직원이 계산하는 동안 스카프를 슬쩍해서 가방에 넣은 사실이 들통나 망신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 많은 대중 앞에서 동장에게 “야, 너 거기 서! 나한테는 한번도 인사 안하더니(중략) 너 같은 것은 조사받고 (감방에)처넣어야 해”라고 폭언을 퍼부어 지탄을 받았다.

 

애향심과 봉사정신을 망각하고 최근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여성 지방의원들의 현주소다.

 

국민들은 ‘군림하려는 서투른 벼슬아치와 좀도둑’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심지어 지방의회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10여년간 받아가며 지극정성으로 모시면서도, 홀로사는 노인을 찾아가 말 벗을 해주고 수입의 30~40%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쓰는 의원이 있다. 아침 밥을 짓다가도 민원 전화가 오면 상담이 우선이다.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있다. 바로 김필례 고양시의회 의장(53 민주당·백석1·2동, 마두2동)이다.

군인의 아내, 3남매의 엄마…주부 김필례

군인의 아내로, 2남1녀를 키우면서 반찬 걱정을 하고 생활비를 걱정하던 평범한 주부가 어떻게 지역정치를 하게 됐을까. 든든한 후원자가 있거나 아니면  돈이 많아 자리 욕심이 났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에 던진 답변은 의외였다.

 

“직업 군인 만나 36년 전 고양시로 이사와 단칸방에서 시작했어요. 애 셋 키우면서 치매걸린 시어머니 수발드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었는데 아이고 무슨 정치입니까.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인데. 없는 살림에도 돈이 됐든, 몸으로 하든 봉사를 조금씩 했죠.”

 

동네 어르신을 돌보며 시작한 그의 봉사는 바르게살기운동 고양시협의회 5~6대 회장직을 맡으면서 좀더 체계적으로 이뤄졌고 고양·일산소방서 119안전지킴이 연합대장 등을 맡아 뭐든 마다하지 않고 몸을 혹사시켰다.

 

지역정치라는 게 봉사정신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아닐 터. 김 의장의 정치는 가정에서 시작됐다.

 

“그 긴 세월 이야기 다하려면 밤새도 모자랄텐데. 한강 물이 다 제 눈물입니다.(하하) 군인 제복 하나 보고 시집와서 살다 보니 빡빡했죠. 생활비를 벌자싶어 92년 한방화장품 고양지사를 운영했는데 남편이 워낙 철두철미한 성격이라 사업하겠다 했을 때 반대가 심했는데 나름 잘 꾸려가니 인정해주고 가족들도 응원해 주더라구요. 제 정치적 뿌리는 남편과 시어머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 의장은 사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92년 당시 한달에 700만~800만원을 벌어도 남편 기 죽을까봐 남편 월급만큼만 벌었다며 뻥(?)을 쳤다고 한다. 그 대신 남편이 모르는 여유 돈은 자연스럽게 봉사활동 비자금(?)으로 쓰여졌다. 

 

“95만 고양시민을 대변하는 의장이지만 저도 가정에선 평범한 아줌마죠. 가정을 잘 꾸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지역 정치를 하겠어요. 의정활동을 하다보면 가정 일에 소홀할 수 있는데 전 용납하지 않아요. 새벽 다섯 시에 기상해 아침 준비하고 집안 일 다 해놓고 나오죠. 우선은 가정이 편안해야 합니다.”

 

이처럼 남모르는 노력을 통해 김 의장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표’ 정치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고양시의회 최초 여성 의장…정치인 김필례

민주당 출신 재선 시의원인 김 의장은 지난해 7월 제6대 고양시의회 전반기 의장에 선출되면서 고양시의회 최초의 여성 의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는 ‘어머니와 같은 자상함과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자신만의 무기라고 소개했다.

 

“5개당 소속, 30명의 의원들이 활동하는 고양시의회의 경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화합’이죠. 그냥 사심없이 제 자신을 24시간 오픈하고 있어요. 의장이 된 순간 김필례는 95만 고양시민의 것이고, 의원들을 보듬는 사람인거죠. 그러다 보니 누적된 피로때문에 고생인데 성대에 굳은살이 박혀 목소리가 허스키보이스로 변했을 정돕니다.  의사는 수술도 못하니깐 그냥 말하지 말고 푹 쉬라는데 그게 쉽습니까.(하하) 핸드폰비도 만만치 않게 많이 들지만 다 제가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좋게좋게 생각합니다.”

 

무슨 이유인지 최근 들어 김 의장은 언론 노출이 잦다. 중앙 언론, 방송까지 그의 행동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고양시의회가 ‘서울시 운영 주민기피시설 대책 특별위원회’(이하 특위)를 구성해 활동중인 가운데 그 선봉에 김 의장이 서 있기 때문.

 

“승화원 화장장 등 서울시 운영 기피시설로 인해 수십년간 지역 이미지가 훼손되고 부동산 가치 하락, 교통체증, 악취 발생, 개발 소외 등으로 많은 시민들이 고통을 받아왔어요. 저 또한 피해받은 시민 중 한명이죠.”

 

김 의장은 그 동안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서울시에 강력히 항의하고자 서울시청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까지 나섰다.

 

“서울시의 이중적 행태를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으로 1인 시위는 서울시의 기피시설에 대한 불법행위와의 차별화를 위해 철저하게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전개했어요.”

 

김 의장은 의원들과 함께 주민기피시설 대책 거리홍보전부터 시작해 주민간담회 개최, 관련 지자체에 결의문 및 성명서를 보내는 등 그야말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주민을 위한 일이기에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는다. 무조건 돌진이다. 지역 일에는 참으로 억척스럽다.

 

또 지난해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축산농가의 피해가 점차 늘어나자 김 의장은 현장으로 달려갔다. 시의회 차원에서 연말연시 송년행사를 모두 취소하고 의원들과 함께 구제역 대책상황실을 방문해 근무자들을 격려하고 26개소 방역통제소 근무자들에게 직접 빵과 우유를 전달했다. 그도 부족했는지 지난해 12월 29일에는 이동통제소 방역 근무를 자청하고 나섰다. 

 

올해 5월 어버이날 효도 행사에서도 김 의장 특유의 여성미는 진가를 발휘했다. 200여명의 어르신들에게 직접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점심 배식까지 도맡았던 것. 대게 바쁜 일정으로 자기 인사말만 하고 행사장을 뜨는 여타 정치인들과 달리 김 의장은 어르신들과 같이 있었다.

 

“어버이 날 어르신들과 같이 지내는 거 당연한 일이죠. 셋째 며느리지만 시어머님도 모셨고, 지금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으니 다 제 어머님이죠. 내 어머니 혼자 식사하게 두고 어딜갑니까. 아무리 바빠도. 안 그래요?”

산소같은 여자…김필례

‘전라도 아지매’로도 불리는 김 의장은 허스키한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게 ‘산소 아줌마’로 통한다.

 

“예전에 바르기살기협의회 회장할 때 제가 나타나면 주변 사람들이 ‘생동감이 느껴진다’ ‘상쾌한 바람이 분다’라고 했어요. 제가 뭐 얼굴이 예뻐서 그랬겠어요? 제가 다른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뭔가가 있나봐요.(하하)”

 

그는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산소 아줌마’로 불렸다.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선수가 필드에 나타나면 팀 전체가 활기차다는 뜻으로 ‘산소탱크’로 불리는 것처럼 저도 지역사회에, 시민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은 아줌마가 되고 싶은거죠.”

 

지역 일이라면 열 일 제쳐놓고 달려가는 여장부지만 그도 여자다. 쉬는 날엔 손녀 재롱 보는 재미로 살고 요즘에는 며느리, 사위를 보게 돼 예비 시어머니, 장모 연습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95만 고양시민은 행복하다. 세계를 들어올린 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 선수가 있고, 성대에 굳은 살이 생겨도 쉴틈없이 지역을 누비는 ‘바보같은’ 정치인 김필례 의장이 있기 때문이다.

 

글 강현숙기자 mom1209@ekgib.com

사진 전형민기자 hmjeon@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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