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일본 사회에도 지금의 우리와 똑같은 화두가 있었다. 학급붕괴. 그 논란의 중심은 부등교(不登校)였다. 학교 가지 않는 아이들이 늘면서 학급이 붕괴되고, 이로 인해 일본의 미래가 위기에 처했다고들 했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부등교 학생은 연간 13만명이다. 이는 취학 아동의 1%에 불과했다. 부등교의 판단기준도 애매하다. 일본에서의 부등교 기준은 연간 결석수 30일 이상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30일을 결석해도 개근상을 받는다. 성인들에게 30일의 유급휴가가 주어지니 아이들에게도 그 정도는 인정해도 좋다는 게 미국식 사고였다.
그런데도 일본은 부등교로 학급이 붕괴된다고 요란을 떨었다. 나머지 99%의 정상적인 학생들조차 붕괴된 학급의 희생자로 몰고 갔다. 하지만 학생들의 생각은 달랐다. 학급붕괴를 걱정하지도, 느끼지도 않았다. 일본 총무청이 발표한 1998년 자료에서 초등학생의 93%, 중학생의 92%가 여전히 ‘학교생활이 즐겁다’고 답하고 있다.
사토 마나부의 경고, 우리 얘기다
교육학자 사토 마나부(佐藤 學)는 이런 일본 사회를 실랄하게 비난했다.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2000년)의 서문이 온통 그 얘기다. “학급 붕괴를 표제로 내 건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출판사로부터 그런 책 10권에 대한 서평을 의뢰받았다. 다 읽고 나서 깜짝 놀랐다. 저자 10명 중 학급붕괴 교실을 가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매스컴을 통해 들은 얘기를 기초로 하고 있었다”.
사토 마나부는 책속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당신은 학급붕괴의 현장을 본 적이 있는가”.
2000년 일본에서 출간된 그 책 속에 ‘2011년의 대한민국’이 있다.
교실붕괴와 교권붕괴가 나라를 뒤덮고 있다. 한쪽에서는 매 맞는 아이들로 교실이 붕괴된다고 야단이다. 다른 쪽에서는 들이대는 아이들로 교권이 붕괴된다고 난리다. 학생인권이 등장한 작년부터 쭉 그랬다. 어느쪽 얘기를 듣더라도 결론은 같다. ‘학교는 붕괴되고 있다’다.
그런데 실제로 붕괴됐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 앞으로도 그럴 기미는 없어 보인다. 이쯤에서 10년전 사토 마나부가 했던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보자. “당신은 교실붕괴와 교권붕괴의 현장을 본 적이 있는가.”
교권 붕괴의 자료로 ‘누나 사귀자’라는 동영상이 등장한다. 덩치 큰 남학생이 여 선생을 껴 앉았다. 힘 없는 여선생은 빠져 나오지 못한다. 학생은 희희낙락하며 ‘누나 사귀자’며 희롱한다.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기까지 한다. 1년도 훨씬 넘은 동영상이다. 그런데도 계속 틀어댄다. 교권이 붕괴되고 있다고 선동하기 위해서다.
‘소풍날’과 ‘오장풍’은 교실붕괴쪽 동영상이다. 집합에 늦은 학생이 교사에게 매를 맞고 있다. 따귀와 발길질이 이어졌다. ‘오장풍 선생’의 체벌은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코흘리개 어린학생이 교실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녔다. 역시 꽤 된 영상들이지만 여전히 자료화면으로 써먹고 있다. 학생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다고 선동하기 위해서다.
교실붕괴도 없고, 교권붕괴도 없다
모두 거짓말이다. 그 학생과 그 교사의 문제다. 99%의 학생은 여전히 교사를 존경하고 따른다. 99%의 교사들은 여전히 학생들을 사랑하고 아낀다. 교실은 붕괴되지 않았고 교권도 추락하지 않았다. 동영상 두 세편으로 교육을 통째로 삼키려는 보수와 진보의 ‘뻥튀기’ 전쟁일뿐이다.
10년전 그때. 일본 총무청이 발표한 또 다른 자료가 있다. 초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3학년이 대상이다. 여기서 일본 학생의 3분의 2가 방과후 30분~1시간씩 공부를 하는 것으로 나왔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2~3시간이었다. 사토 마나부는 ‘메이지(明治)시대 이후 열심히 공부하기로 유명했던 일본이 왜 한국에 뒤쳐지는가’라며 탄식했다.
그랬던 한국이 이제 10년전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학교 현장은 이념에 휘둘리고, 학교붕괴의 침소봉대가 언론을 도배하고, 혼란스러워진 학생들은 배움으로부터 도주하고 있다. 정치인과 언론이 만들어가는 몹쓸 합작품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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