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부평구 십정1동 비만 오면 잠못드는 달동네

폭우로 낡은 주택·담벼락 곳곳 붕괴 주민들 “공짜로 살라해도 세입자 없어… 대책 마련” 호소

“집이 무너지는데 누가 와서 살겠어요. 얼마 전에 보증금도 없이 공짜로 와서 살아만 달라고 사정하는데도, 아는 사람이 들어왔다가 2주도 못 버티고 나갔어요.”

 

29일 오후 3시께 인천시 부평구 십정1동 216번지 일대, ‘달동네’라는 말이 이곳을 두고 생겨났을까 싶을 정도로 굽이굽이 집들이 층층이 들어선 이 곳 골목에도 정부의 새주소 제도에 맞춰 허름한 벽돌집에 ‘열우물로 126번길 36’이라는 안내판이 부착돼 있었다.

 

맞은편 집 주소판에는 ‘열우물로 126번길 38’ 안내판이 부착돼 있었고, 당연히 있어야 할 ‘열우물로 126번길 37’ 자리에는 단층주택 대신 흙과 시멘트 잔해들이 천막으로 가려진 채 폐허만이 남아있었다.

 

이곳은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입주자들이 살던 곳이지만 집중호우가 계속되면서 지반이 침하, 이달 초 붕괴됐다.

 

입주자들이 붕괴 전날에야 동 주민센터로 임시 대피, 다행히 인명피해는 면했지만 이 곳 일대는 언제 어느 집이 무너져도 신기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216-81번지는 축대벽이 가로로 긴 균열흔적과 함께 임산부가 배부른 것처럼 원래 위치보다 30cm가량 튀어나와 이미 붕괴가 진행 중임을 드러냈으며, 216-60번지도 방과 방 사이가 최대 한 뼘 정도 속살을 보인 채 기울어지고 있었다.

 

어느 집은 쇠 파이프 10여 개를 동원, 집이 기울어지는 것을 막고, 어느 집은 시멘트를 발라 갈라진 곳을 메웠지만 모두 임시방편일 뿐, 손으로 벽을 쳐도 안에 흙이 드러나고 발로 차면 집이 흔들리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지난 1970년대 마을이 형성되면서 흙과 시멘트를 섞어 집들이 지어진 십정2지구 일대는 이제 낡을대로 낡아 비가 오면 집으로 물이 들어오고 도시가스조차 없어 냉난방이 안 돼 외국인 노동자들도 외면하는 ‘죽은 동네’로 전락했다.

 

그러나 글자 그대로 주거환경을 바꿔준다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은 주민들의 재산권만 묶어둔 채 수년을 지체하면서 아예 지난 2009년 LH가 사업을 중단, 노후화 및 붕괴현상만 가속화 되면서 현재 균열 및 붕괴현상을 보이는 곳은 500채(주민대책위 추산)에 이른다.

 

이제는 한 집 건너 한 가구 꼴로 남아있는 이곳 주민들은 떠나지도 남아있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갇혀 다가올 초가을 태풍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주민 남인숙씨(60·여)는 “비가 올 때마다 축대벽이 기울어지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인데 태풍이 와서 정말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아랫집까지 몇 가구는 큰 피해를 볼 것”이라며 “당장 사업이 재개돼도 보상받는 데는 몇 년 걸린다는데 LH나 인천시, 부평구에서 그때까지만이라도 지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말했다.

 

박용준기자 yjunsay@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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