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의 안과 밖

오래 전, 해마다 문화예술 각 분야중 하나를 지정해, 한 해 동안 관련 분야의 다양한 활동을 집중적으로 펼치는 ‘문화예술의 해’ 사업이 시행된 기억이 있다.

 

1991년 ‘연극영화의 해’를 시작으로 10여 년을 이어 오면서, 왠만한 분야는 한 번씩 순서가 돌아가게 됐고, 딱히 더 이상의 특정 분야를 찾기 힘들게 됐을 때, 뜻하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2001년 ‘지역문화의 해’가 그것이다.

 

이로 인해 21세기를 여는 문화예술계 화두를 ‘지역문화’가 선점하게 됐으니, 그 의미 또한 사뭇 컸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초 기대와 달리 ‘지역문화의 해’는 새로운 세기를 향한 문화적 상상력을 이끌어낼 만큼의 의미있는 성과를 창출해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애초 이슈를 만들어 냈던 에너지에 비해 지역문화의 안과 밖을 이어줄 추동력과 구심점이 그에 미치지 못했던 듯 싶다.

 

지역문화와 관련해 또 하나의 남다른 기억이 있다. 2006년 추진됐던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이다. 당시 지역문화 현장의 적극적인 청원 등에 힘입어 국회의 입법 발의까지 추진됐다.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은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근원적이고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만만치 않은 시도였다. 그러나 이 역시 정책적 우선 순위에 밀리고, 관료주의와 이해관계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은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위 두 사례들은 우리 문화예술계를 뜨겁게 달궜던 이런 저런 대소사에 비할 때, 소소한 얘깃거리 정도로 지나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각각의 전개 과정을 좀 더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를 통해 우리네 지역문화의 안과 밖의 모습이 어떠하고,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상념의 단초를 끄집어 낼 수는 있을 것 같다.

 

먼저, 오늘날 우리네 지역문화는 이슈를 생산하고, 발진시킬 수 있는 내적 역량과 자원은 갖추고 있으나, 지역문화 안팎의 공감대를 이끌어 낼 내적 구심점이 부재하다. 때문에 이를 갈무리해 엮어냄에 있어 힘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는 폭과 깊이는 충분치 못한 실정이다.

 

여기서 구심점이라 함은 사람일 수도, 제도일 수도, 정책이나 프로그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적 역량과 에너지의 총화로써 기능할 수 있다면, 안팎의 힘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는 폭과 깊이를 한층 더하게 될 것이다. 특히 인적, 물적 자원이 제한적인 지역문화의 여건에서 이는 더욱 절실한 실정이다. 새삼 2001년 ‘지역문화의 해’를 돌아보면서, 안타깝게도 예나 지금이나 우리 지역문화 안의 풍경은 여전한 듯 보인다.

 

한편, 지역문화 밖에서도 ‘지역성(Locality)’의 시대적 당위성과 문화적 이슈 등에 주목하고 있음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켠에선 지역문화에 대한 오래 된 선입관과 편견을 내려놓지 못하고 계도의 대상이거나, 하위문화의 한 부류 정도로 치부하곤 한다. 2006년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지역문화 밖의 시선이 일정 부분 그러했고,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 같진 않다.

 

사실 우리네 지역문화 안팎을 보면 그 문화적 결이 그리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서로에게 닫히고 겉돌면서 반쪽짜리 고군분투를 힘겹게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풍경과 지형이 조만간 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세상사 모든 안과 밖이 서로의 또 다른 모습일진데, 시선을 맞추려는 눈높이의 모색 없이는 서로의 온전한 모습을 그려내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지역문화 안팎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또한 서로가 보듬고 풀어낼 과제일 것이다. 지역문화 안팎의 이런 풍경을 기다려 본다.

 

박명학 예술과마을 네트워크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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