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正義)는 표(票)가 정하더라…

김종구 논설위원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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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앞서 양해부터 구해야 했다. ‘시장님, 저희 오보로 인해 마음 상하셨죠. 본의 아니게 피해를 드렸습니다’. 대답은 담담했다. ‘괜찮습니다. 일부러 나쁘게 쓴 ○○일보도 있는데요. 사실은 나도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2006년 5월 31일은 한국 정치사에 대기록을 남긴 날이다. 집권 여당이 어디까지 참담해질 수 있는지 그 끝을 보여준 날이다. 선거는 해보나마나였고 결과는 기다리나마나였다. 선거가 있는 날 언론사 편집국에는 통닭과 맥주가 준비된다. 밤샘작업을 위한 야식이다. 하지만 그날은 필요 없었다.

 

열린우리당은 서울 구청 25곳에서 모두 지고, 인천 구청(군청) 10곳에서도 모두 졌다. 경기도 31개 시군에서도 모두 지고 있었다. 1면 제목이 나온 건 초저녁이다. ‘열린우리당, 수도권 전멸’. 이게 화를 불렀다. 인쇄기가 돌아갈 때쯤 노란불 하나가 들어왔다. 열린우리당 박영순 후보였다. 다음날 모든 신문에는 ‘바로 잡습니다’가 실렸다.

 

박영순 후보만 훌륭했던 건 아니다. 능력 있고 깨끗한 열린우리당 후보는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박 시장외 누구도 선택받지 못했다. 모두 참담한 결과를 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그들의 공약도 모두 휴지조각이 됐다.

 

무상급식이 이겼다

 

정치는 그런거다. 이기는 쪽이 싹쓸이하는 것이고, 이기는 쪽의 말이 정의가 되는 것이다.

 

‘2006년 봄’의 정의는 한나라당이었다. 한나라당이 말하는게 정의였다. 콩을 팥이라고 하면 그냥 팥이 됐다. 왜 콩이 팥이냐고 따져봐야 소용없었다. 기억속에 박 시장 표정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간판을 가지고 어떻게 시정을 해야 할지 걱정입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던 것 같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2011년 여름’의 정의는 야당과 진보다. 야당이 말하고 진보가 밀면 그걸로 끝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다만 자리가 바뀌었다. 한나라당 대신 민주당이 꽃가마에 앉아 있다. 열린우리당 대신 한나라당이 빈사상태에 허덕이고 있다.

 

그 속에 무상급식이 있다.

 

2년 넘는 논란 속에 세상에 갖다붙일 논리는 다 갖다붙였다. 부자급식이 나오면 보편적 복지가 나왔다. 포퓰리즘이 나오면 국가의 의무가 나왔다. 단계적 급식이 나오면 전면적 급식이 나왔다. 수도 없는 토론과 논쟁이 이어졌다. 허비된 시간과 낭비된 에너지가 엄청나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기들의 말이 정의라고 고집했다.

 

이제 싸움이 끝났다. 8월 24일로 다 끝났다. 주민투표는 33.3%를 넘지 않았다. 무상급식이 이기고 오세훈이 졌다. 야권이 이기고 한나라당이 졌다. 무상급식은 이제 부자급식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다. 포퓰리즘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다. 단계적 급식이 아니라 전면적 급식이다. ‘무상급식은 좋은 것’이라고 표가 결론을 낸 것이다.

 

털어낼 때다.

 

인정하고 손 떼라

 

‘사실상의 승리’니 뭐니 하며 25.7%에 매달리면 추하다. 33.3%에 0.1%라도 모자랐으면 진거다. 사람 뽑는 선거에서 2등이 필요 없듯이 의견 묻는 투표에서 33.3% 아래는 의미없다. ‘보궐선거에서 진검 승부를 벌이자’는 얘기는 또 뭔가. 지금까지 국민들 지치게 한 것으로도 부족하다는 말인가.

 

2006년 봄, 그때 한나라당은 피도 눈물도 없었다. 행정과 의회를 독식하고 이를 무기로 모든 권력을 싹쓸이했다. 거기서 생기는 돈도 전부 가져갔고, 거기서 생기는 자리도 모두 차지했다. ‘곁 좀 달라’고 열린우리당이 매달렸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이겼을 때 그렇게 누렸으면 졌을 때 잃을 각오도 해야 한다.

 

‘정치는 바람개비다. 혼자 돌려고 애쓰면 소용없다. 바람이 불어줘야 한다. 바람을 기다려라.’

 

JP(김종필)가 30년 전에 했던 말이다. 바득바득 우기지 말고 여론에 맞장 뜨지 말라는 말이다. 지금 한나라당에게 필요한 이 말을 살아 있는 ‘정치 9단’은 이미 30년 전에 하고 있다.

 

여론의 바람이 떠밀 때는 그냥 떠 밀리는 거다. 차라리 오세훈의 선택이 보기 좋다.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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