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분석, 똑같은 핑계… 추석 민심이 선거까지 간다
“중소 상공인들은 어려워지고 대기업만 좋아지고 있다”. “국민이 주가폭락에 민감하게 반응하더라”. “정치권은 물가고통 외면하고 싸움만 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정치인들이 전하는 추석 민심이다. 딱 떨어진다. 대기업은 연일 대박인데 중소기업은 연일 쪽박이다.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던 주식시장의 서킷 브레이크(주식매매 일시정지)가 사흘이 멀다 하고 발령되고 있다. 친박 친이, 좋은 투표 나쁜 투표로 갈라서면서 정치가 국민의 진을 빼고 있다.
이만한 분석이 없다.
그런데 이건 2011년 추석 얘기가 아니다. 11년 전인 2000년 9월 신문에 실린 추석 민심이다. 앞의 것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한 말이고, 뒤의 것은 민주당 이재정, 정세균 의원이 한 말이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공교롭게 그 해의 추석도 9월12일이었다. 이쯤 되면 추석 민심 데자뷰다.
추석 민심이라는 게 늘 그렇다. 돈 쓸 곳은 많고 주머니는 가벼우니 ‘먹고살기 힘들다’라는 말이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물가가 뒤로 간 적 없으니 ‘장보기가 무섭다’라는 푸념도 단골메뉴다. 장마 지나고 태풍 지나서 오는 게 추석이다 보니 ‘수해주민은 여전히 힘들다’라는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이제 그 뻔한 얘기가 또 나올 때가 됐다. 다음 주말이면 너도나도 마이크 앞에 설 것이다. 추석 민심이라고 하든 귀향보고라고 하든 제목은 중요하지 않다.
‘중소 상공인들이 힘들어하더라’ ‘주가 폭락에 대한 원성이 높더라’ ‘물가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더라’
대단한 민심 대장정이라도 다녀온 양 얘기하지만 듣는 이는 별로 없다. 11년 전에도 들었고 작년에도 들어서다. 결론을 짐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경제는 나쁜데 그 책임은 상대 당에 있다.’ ‘주가가 폭락한 것은 상대 당이 잘못해서 그런 거다.’ ‘우리는 싸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저쪽이 걸어왔기 때문이다’…. 악화된 추석 민심 떠넘기기다. 민심 읽기도 데자뷰고, 책임회피도 데자뷰다.
그래서 무슨 도움이 될까 싶다. 그런다고 민심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2007년의 추석을 돌아보자. 17대 대통령 선거로 가는 마지막 추석이었다. 추석을 4일 앞두고 한국연구가 여론조사를 했다. 여기서 이명박 후보가 56.3 %를 얻었다. 다음은 정동영 11%, 손학규 7.2% 순이었다. 이틀 뒤 대단한 미터 조사도 비슷했다. 이명박 50.8%, 정동영 10.3%, 손학규 7.9%.
이쯤 되면 추석 민심은 일방적이다. 누가 봐도 민주당 쪽으로 참패의 경고가 가고 있었다. 그런데 추석이 끝난 뒤 마이크 앞에 선 민주당 의원들은 딴소리를 했다.
‘손학규 후보 쪽으로의 반전 분위기가 확실했다.’(우상호 의원) ‘경선을 마무리하고 빨리 (정동영으로) 단일화하라고 하더라.(양형일 의원) ‘문국현 후보가 신선하다는 의견들이 있다.’(이상민 의원)
큰 착각이었거나 작정하고 던진 거짓말이다. 그런 수에 휘둘릴 민심이 아니다. 석 달 뒤 선거가 치러졌고 결과는 9월25일과 9월27일의 민심이 그대로 옮겨갔다. 이명박 후보 48.7%, 정동영 후보 26.1%. 맥빠진 선거만큼 이 후보의 득표율이 빠졌고, 야권후보 단일화만큼 정 후보의 득표율이 올랐을 뿐이다.
차라리 참담한 현실을 인정하고 통렬한 반성의 추석 민심을 얘기했더라면 어땠을까. 솔직함에 돌아갈 동정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2011년 추석이 또 선거를 앞두고 걸렸다. 19대 총선으로 가는 마지막 추석이다. 언제나 민심은 중립을 허락하지 않았다. 0.1%라도 한쪽으로 치우쳤다. 쏟아지는 욕으로 만신창이가 될 ‘일방’이 이번에도 있을 거다.
그 ‘일방’이 어떤 추석 민심을 얘기할지. 이번에도 핑계 대고 남 탓하는 데자뷰가 반복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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