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료원, 공공의료의 미래를 열다, <4>파주병원

“예? 북측에서요?” 전화를 끊는 김현승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장의 표정이 상기됐다.

 

북한 홍수 피해 긴급지원 밀가루를 실은 트럭들이 임진강을 건넌데 이어 각 언론에선 2차 남북비핵화회담 성사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던 지난 16일, 김 원장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28일 개성공단에서 북한 의료진을 대상으로 응급의료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개성공단에서 무료진료를 하더라도 남측근로자 이외에 북측근로자와는 말도 섞지 못하게 했던 북한이었기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의료진과 남한의료진과의 첫 공식만남, 이는 국내 어느 의료기관도 해내지 못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이 최북단 지역거점 병원으로써 남북의료교류의 견인차로 떠오르고 있다.

 

■ 최북단 지역거점 병원 위상 확립

개성공단에는 1천200여명의 남측근로자들이 근무를 하고 있다.

 

물론 이들도 착실하게 의료보험료를 납부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하지만 이들이 제대로된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지연 공공사업과장은 “공단근로자들은 2주에 한 번씩 주말에만 남쪽 집에 가기 때문에 응급질환 외에는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의료사각지대에 있다”며 “하지만 대부분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어 정기적 질환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의료 애로사항이 알려지면서 국내 최북단 지역거점 병원인 파주병원이 나섰다. 파주병원은 지난 2009년 9월 첫 공단내 무료진료 및 예방접종을 실시한 이후 매년 봄 가을 무료진료를 진행해 오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파주병원은 공단근로자들의 안정적인 건강관리를 위해 개성공단내 도의료원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병원은 앞으로 남측근로자뿐아니라 북측근로자를 상대로 무료진료를 확대하려는 야심찬 계획도 가지고 있다.

 

“매번 공단을 다녀올 때마다 북측근로자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일회용 주사기를 수없이 재활용 할 정도로 의료환경이 열악했거든요.”

 

김 원장은 정치적 분위기가 조성되는 한에서 1단계 남측근로자, 2단계 북측근로자, 3단계 북측근로자 가족, 4단계 개성시민으로까지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병원은 또 공단내 응급상황 발생시 환자를 파주병원으로 후송할 수 있는 응급의료후송병원 지정과 관련 공단과 MOU 체결을 앞두고 있다.

 

■ 생사의 갈림길에서 병원을 살린 ‘노사 대타협’

4년 전만해도 파주병원이 개성공단의 응급환자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실제로 공단에서 발생한 응급환자가 공단에서 가장 가까운 파주병원이 아닌 일산 혹은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후송되는 과정에서 운명을 달리한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파주병원은 지역주민조차 ‘병원’으로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낙후된 시설과 의료의 질 또한 떨어졌다.

 

병원이 좋아지기 시작한 건 4년전 김현승 원장이 부임하고, 노사가 대타협을 이루면서부터였다.

 

김 원장은 부임과 동시에 병원이 추구해 나가야 할 다섯 가지 핵심가치를 내걸었다. ▲병 잘 고치는 병원 ▲친절한 병원 ▲설명 잘 해주는 병원 ▲깨끗한 병원 ▲이용하기 편리한 병원이 그것이었다.

 

“처음 부임했을 땐 병원에 거미줄이 쳐져 있을 정도 였습니다. 의료진은 환자에 대한 애정이 없고, 직원들은 매너리즘에 빠져 패배주의가 팽배했죠. 이대로 가다가는 문 닫는 건 시간문제였죠.”

 

김 원장은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직접 쓰레기를 줍고, 수익이 안되는 환자라 하더라도 친절함을 잃지 않았다. 이런 김 원장의 솔선수범은 의료진과 직원들은 물론 지역주민들에게도 감흥을 일으켰다.

 

“이전 권위적이고 시간만 떼우다 가는 원장들과는 너무나 다르게 비춰졌습니다. 병원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이 느껴졌죠. 직원들이 이분이면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박영태 전파주병원 노조지부장은 당시 김 원장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늘 적대적 관계에 있던 노사는 김 원장 취임 6개월만에 대타협을 이뤘고, 이때부터는 양측은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아닌 ‘우리’라는 이름으로 병원에 대해 함께 걱정하고, 발전방안을 의논해 나가기 시작했다.

 

병원을 살리고자 하는 일념으로 고통을 감내해온 노사의 노력은 마침내 잦은 노사갈등으로 폐기처분됐던 ‘병원 신증축’을 되살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 최신 시설, 최고의 의료서비스

320억이 투입됐다. 연면적 2만246㎡ 위에 지하 2층, 지상 5층 건물로 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급 병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최신 의료장비도 갖췄다. 지난 7월 파주병원은 도의료원 산하 병원 중 최초로 3.0테슬러급 최신식 MRI(자기공명영상장치)를 도입했고, 내달 중에는 파주시의 지원을 받아 128채널 CT(컴퓨터단층촬영장치)도 설치된다. 현대 의료에 있어 양대 진단장비를 최신식으로 모두 갖추게 된 것이다.

 

송일규 영상의학실장은 “두 장비 모두 대학병원급 최신식 진단장비로 이제는 현대 의학에서 진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의료의 질 또한 개선됐다. 4년전만해도 전문의라고는 6명밖에 안됐다. 김 원장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의료진을 늘려온 덕분에 지금은 전문의만 18명이고, 진료과도 14개과로 늘어났다.

 

곧 응급의학과 전문의 1명이 더 충원될 예정이다. 특히 내과의 경우 소화기내과 2명, 심장내과 1명, 호흡기내과 1명, 내분비내과 1명 등 전문의만 5명에 이를 정도로 질환별 세분화가 돼 있다. 이는 기껏해야 제2 내과 정도로만 운영되고 있는 여타 의료원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다.

 

의료진의 수준 또한 여느 대학병원에 뒤지지 않는다. 김미정 소아과 과장의 경우 그날 외래 예약이 오전 10시경에 끝날 정도다.

 

여기에 심장내과는 김 원장이 직접 진료를 맡고 있다. 김 원장은 연세대 세브란스 강남병원 부원장을 지냈으며, 지역내 기관장들은 물론 거물급 인사들의 주치의일 정도로 심장질환과 관련해서는 정평이 나 있다.

 

윤철원기자 ycw@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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