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의 하나로 ‘중소기업 적합 업종ㆍ품목’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해 9월29일 정부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동반성장 추진대책에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면서 공식화됐다.  

 

이에 ‘중소기업 적합 업종ㆍ품목’ 선정 작업의 주체인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 9월27일 중소기업 적합업종 1차 선정 품목 16개를 확정하여 발표했다. 세탁비누, 골판지상자, 재생타이어, 순대, 청국장, 된장, 막걸리 등 상대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합의 도출이 용이한 것들이 우선 선정됐다. 당초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됐던 두부, 콩나물, 데스크톱PC, LED 등 나머지 29개 쟁점품목은 10월 중에 있을 2차 발표에서 선정될 예정이고, 향후 선정품목도 늘려갈 계획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선정작업은 중소기업이 경영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업종 및 품목을 지정하여 이 분야에 대한 대기업의 자율적인 진입자제 및 사업이양을 통해 중소기업의 경영안정과 동반성장을 도모해 나간다는 취지다. 한국 경제의 지속적이고 건전한 성장을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은 매우 중요하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작업과 관련해 중소기업과 대기업, 관련 경제단체들이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한 의견대립으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어 우려스럽다. 대기업과 관련 단체들은 기본적으로 특정 분야에 대한 신규진입, 사업확장 등을 제한하는 것은 자유로운 경쟁을 본질로 하는 시장경제원리에 반하는 것으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입장인 반면 중소기업과 관련 단체들은 대기업의 진출로 다수 중소기업이 도산하거나 경영상 애로에 직면하고 있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보호를 위한 이 제도의 도입을 환영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경제 환경은 모든 분야에 걸쳐 급속한 기술발전과 산업간 융복합화의 진전으로 업종 간, 품목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특히 업종별, 품목별 경제적 환경과 조건이 동태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어떤 업종과 품목이 중소기업에 적합한지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또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같은 규범적 진입장벽의 설정은 어떤 형태로든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고, 관련 제품의 수입 유발, 기술 발전의 제약, 소비자 후생 감소 등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이 외에도 국내 기업에만 이 정책을 선별 적용할 경우 자칫 국내 대기업들의 발목을 잡으면서 외국계 기업의 이익만 증대시키는 역차별 문제를 불러올 소지도 있다. 과거 1979~2005년 시행되던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가 고유업종 품목 수를 꾸준히 줄여 나간 끝에 2006년 결국 폐지된 것도 이런 부작용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부는 과거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의 폐해를 인식하고, 업종별, 품목별 시장특성을 면밀히 분석한 후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시장에 줄 수 있는 충격과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소기업 적합성 기준을 엄격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기업의 참여가 배제되더라도 품질, 위생, 안전 등 소비자 만족도가 감소되지 않는 품목으로 한정하고, 국내 대기업의 역차별 가능성이 낮은 품목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합리적 기준 하에 선정된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 대해서는 정부와 대기업이 합심하여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 품질개선, 기술개발, 경영혁신, 마케팅 및 시장 개척과 인프라 구축의 지원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며 공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ㆍ품목 선정 작업이 실질적으로 국내 대중소기업들의 유기적 역할 분담과 협력 관계 구축을 통해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한국 경제의 선진화에 이바지 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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