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릇노릇 익어가는 주말 오후, 오랜만에 전시장 순례에 나섰다. 크고 작은 전시회에서 만난 화가들의 내밀한 조형세계와 교감하는 기쁨은 가을햇살만큼이나 따사로웠다. 잔잔한 감동에 상기된 채, 전시장 입구에 비치된 방명록마다 정성껏 감사의 말과 이름을 적었다. 작품을 감상하고 그냥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하지만 나는 방명록을 지나치지 못한다. 방명록의 가치를 깨우쳐준, 이제는 고인이 된 한 원로화가의 특별한 이야기 때문이다.
1955년, 서울의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미술관에서였다. 한 화가의 개인전 개막식 날, 전시장은 관람자들로 붐볐다. 그때 평상복 차림의 한 여고생이 얼굴을 붉히며 화가에게 말을 건넸다.
“저, 저도 서명(書名)을 해도 되나요?”
이 말은 전시회를 관람한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는 ‘방명록’에 자기도 서명을 해도 되냐는 뜻이다.
“그럼, 그래도 되지.”
화가는 흔쾌히 승낙했다. 이미 방명록에는 화가 장발, 김환기, 이응노 같은 쟁쟁한 화가들의 서명이 가득했다. 잠시 후, 방명록을 펼쳐보던 화가는 한 서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벅차오는 마음에서.”
세월이 흘러, 화가는 어느덧 아흔 살의 원로가 되었다. 어찌 보면 이 원로화가는 그 여고생의 서명에 힘입어 평생 ‘화업(畵業)’을 일구었을지 모른다. 방명록은 “특별히 기념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의 이름을 적어놓은 책”을 말한다. 관람자는 단순히 자신의 감상 소감이나 이름을 적는 행위에 불과하지만 화가에게는 그렇지 않다. 원로화가가 오십여 년 전의 일을 평생 기억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관람자의 진심어린 소감 한마디는 화가에게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위로와 격려와 응원이 된다.
화가에게 작업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무상(無償)의 행위다. 그렇다고 작업과정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창작의 고통과 세상의 몰이해와 맞서야 한다. 이럴 때 화가는 방명록에 둥지를 튼 관람자의 마음에 의지하며, 다시 붓을 든다.
모든 관람자는 작품 앞에서 평등하다. 대통령이든 노동자든, 미술전공자든 비전공자든 신분과 지위고하에 관계없다. 누구나 작품과 일대일로 마주하며 무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감상의 순간은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다. 그러기에 무명의 여고생은 화가의 작품 앞에서, 기라성 같은 화가들과 동등한 관람자일 수 있었고, 방명록에도 나란히 서명할 수 있었다.
원로화가는 옛 일화를 들려주기에 앞서 이런 말을 했다. “세잔은 자기 작품을 이해해 주는 몇 사람의 벗을 아쉬워했으며, 그 가까운 이해자가 어머니였다.” 그렇다면 원로화가에게는 그 여고생이 “자기 작품을 이해해 주는 몇 사람의 벗” 가운데 한 명이 아니었을까. 사실 원로화가의 작품은 형상을 알 수 없는 추상화다. 흔히 생각하듯이 추상화는 관람자와의 소통 면에서 불리하다. 소재를 사실적으로 그린 구상화보다 이해의 폭이 훨씬 좁다. 그래서 자기 작품을 보고 ‘벅차오는 마음’이 되었다는 소감이 더 감격적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화가는 사진첩을 간직하듯이 방명록을 평생 간직한다. 전시회에 가면 방명록에 서명을 하자. 자기 이름 외에 감상 소감을 곁들이면 더 좋다. 서명은 추임새다. 화가를 평생 춤추게 한다. 또 조형의 진수성찬을 차린 화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서명이다. 작품 감상은 방명록에 서명을 함으로써 완성된다.
정민영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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