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스케치여행] 민둥산 억새-정선

가을비 오는 날 진흙길 걸어 민둥산에 올랐다. 정선에서 곤드레 막걸리 한잔 걸친 여세가 짓궂은 빗길에 힘이 되었다. 개 같은 날이라고 못마땅했지만 정상은 사방 천지가 운무에 휩싸인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무르익은 억새와 끝없이 펼쳐진 산들 사이로 구름은 신들의 승천처럼 하얗게 피어올랐다. 깊어가는 가을, 나는 문득 황동규의 시 철새의 한 대목을 떠 올렸다. ‘모든 나무의 선 그 흔들림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이 시월/ 무사무사의 이 침묵/ 아침, 거품 물고 도망하는 옆집개소리 /하늘을 들여다보면/ 무슨 부호처럼/ 떠나는 새들/ 자 떠나자/ 무서운 복수로 떼 지어 말없이/ 이 지상의 모든 습지/모든 기억이 캄캄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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