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타델(citadel), 도시 경계 속의 또 하나의 경계

시타델(citadel)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난공불락의 요새나 성채를 뜻하는 말이긴 하나, 도시에서 이 시타델이 갖는 의미는 좀 색다르다. 우선은 그 형태와 위치이다. 시타델은 기본적으로 외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내부에 설치된 또 다른 성벽, 즉 내성(內城)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도시 성벽이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는 근대 이전까지의 도시에서 그 모습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그 위치 또한 외부로부터의 접근이 가장 어려운 도시의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아마도 기마전술이나 공성전(攻城戰) 등이 대부분이었던 전쟁에서 성벽 하나가 무너져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조치일 수도 있겠고 혹은 최악의 경우 도시민들이 적으로부터 몸을 피할 최후의 피난처(shelter)로 유보된 지역일 수도 있었을 법이다. 어찌됐건 이중 성벽으로 둘러싸인 만큼 시타델이라는 존재는 그 도시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지켜야 할 그 무엇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시타델 내부에는 무엇이 존재했을까. 그 내부에는 거의 예외 없이 왕궁이나 신전 등 그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나 시설이 위치하고 있었다. 할슈타트(Hallstatt) 신석기 주거군에서조차 마을의 식량 등을 저장하는 창고 혹은 마을 지배자의 주거로 추정되는 지역이 견고하고 촘촘한 기둥과 이중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고대 미케네(Mycenae)나 우르(Ur) 같은 소규모 도시국가는 물론 코르사바드(Khorsabad/그림) 같은 고대 도시, 심지어는 중국의 장안성이나 자금성, 일본의 헤이안쿄(平安京) 등에서도 왕궁이나 신전 등을 포함한 도시 중요 시설이 거의 예외 없이 시타델로 처리되고 있다.

 

아테네나 오림푸스 같은 그리스 도시국가의 언덕 최정상에 위치하는 아크로폴리스(Acropolis)도 역시 그 도시를 수호하는 절대적 존재인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중세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3세기경부터 수많은 건축물이 세워지기 시작했던 프랑스의 까르카손(Carcassonne)만 보더라도 당시 절대 권력이었던 봉건 영주의 성채는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시타델 내부에 움츠리고 있다.

 

도시의 경계가 그 도시의 도시다움이나 정체성 내지는 동질성을 확보하는 한계라고 본다면 경계 속의 경계, 즉 시타델(citadel)의 내부는 그야말로 그 도시의 동질성을 담보하는 본질(本質) 혹은 핵(核)으로서의 의미를 지닐 것이며 그 도시의 존재이유일 것이다. 그것이 식량이건 신(神)이건 황제이건, 시타델 내부의 존재는 도시민이 가끔씩은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지켜야하는 대상이었으며 동시에 그 존재로 인해 도시나 도시민은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일상과 문화에 전념했을 것이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고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하기 위해 외벽을 쌓았던 도시인들은 다시금 나와 나를 다스리는 혹은 내가 경배하고 섬기는 또 다른 아군을 위해 내벽 쌓기를 허용한 셈이다.

 

이미 경계도 사라지고 도시의 본질도 변질되어가는 요즘에 비하면 도시에 있어서 지켜야 할 그 무엇이 존재하던 예전의 도시는 여전히 그리고 충분히 매력적이다.

 

대진대 교수·건축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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