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이 119구급대의 구급이송을 받은 건수가 최근 10년 사이 50만건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구급이송 건수는 2001년부터 매년 증가해 2004년 처음으로 2010년엔 140만건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구급이송 인원도 98만5천여명에서 148만 1천여명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구급대 인력과 장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다. 2001년 1천83대였던 구급차량은 2010년 1천297대로 200여대 늘어난 정도에 불과했다. 전국의 구급대원 수는 2001년 4천291명에서 2010년 6천409명으로 2천118명 늘었지만 지난해부터 대부분 구급대가 2교대 근무를 3교대로 바꿨기 때문에 인력부족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119구급대 현황이다.
올 9월9일부터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됐다. 단순 생활민원에 대해선 소방관이 출동을 거부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법 개정은 지난 7월 한 소방대원의 안타까운 죽음이 계기가 됐다. 주택 난간에 고립된 고양이를 구해달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속초소방서 119구조대 소속 김종현 소방교가 구조 과정에 9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그의 나이 29세였다. 하지만 소방관은 화재진압, 인명구조, 훈련 중 순직의 경우에만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다. 결국 김 소방교는 국립묘지에도 묻히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쓸 데 없는 일에 소방력을 낭비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일었고 법 개정도 이뤄졌다. 소방방재청은 “동물구조, 문 개방 요청, 비응급성 신고 등의 경우엔 출동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개·고양이 같은 동물 구조, 현관문 개방 등 생활민원 출동 건수는 줄지 않는다. 2010년의 경우 동물 구조가 10만7천221 건이다. 5년새 6.3배 가까이 증가했다.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신고를 받으면 출동을 거부할 수 없다”고 소방관은 말한다. 119신고를 받으면 주간에는 20초, 야간엔 30초 내에 출동을 개시한다. “1초가 빠르면 한 생명이 더 산다!”고 질주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119구급대원의 사명감이다.
119구급대원들이 지난 한 해 1인당 평균 222.8건이나 긴급이송에 투입됐다. 구급대원 수는 6천409명에 불과한데 긴급이송 건수는 142만8천건이나 됐다. 격무도 이런 격무는 없다. 소방공무원들의 격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화재진압이나 구조·구급 등을 위해 출동한 건수는 236만8천703건이나 된다. 지난해 말 현재 소방공무원 정원이 3만6천711명이다. 1인당 평균 출동건수가 64.5회다. 내근자까지 포함시킨 통계치다. 게다가 장비 부실도 소방대원들을 위험으로 몰아 넣는다. 출동한 소방차량이 고장이 발생한 게 지난해 137건이다. 각종 소방장비의 노후화 탓이다. 지난해 업무와 관련해 부상하거나 사망한 소방공무원 공상자가 348명에 이른다. 최근 5년간 연평균 328.4명이 부상하고 6.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소방대원들의 근무 환경이다.
소방관들의 과로는 119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기본적인 원인이다. 국민들이 화재나 긴급상황이 아닌데도 119를 누른다. 허위신고도 적잖다. 소방업무 중 화재 출동은 전체의 10~20% 정도에 불과하다. 더구나 구조업무의 전문성 등으로 예비인력이 충분치 못한 데다 예산지원마저 턱없이 부족하다. 소방업무 예산을 재정이 취약한 지방자치단체가 부담케 해선 안 된다. 선진국에선 국가에서 예산을 67%나 보조하는데 한국은 지방교부세 명목으로 겨우 1.7%를 중앙정부가 지원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소방업무 현실이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의 경우 11월 4일 ‘119생활안전단’을 발대시켰지만 지금 한국의 119구급대가 위험에 처했다. 이젠 국민이 119를 구출할 때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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