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령

미시령 위에서 나의 존재성을 들여다본다. 어느새 계절은 가을을 넘기고 있다. 파란 하늘과 먹구름은 삶과 죽음처럼 접해있고 나뭇잎 반쯤 털어낸 산은 과묵하다. 하얀 억새가 11월의 휑한 공간에, 흐르는 마음처럼 나부끼고 있다. 내 안의 독소를 뺀다. 겨울잠에 들어가는 독사처럼. 나는 무언가 그립고, 무언가 허전한 텅 빈 함정 속에서 황량한 시 한 편을 끄집어냈다. 3평짜리 고시원에서 기초생활 수급자로 살며 삶의 끈을 병원에 의탁한 시인의 비명처럼, 그로테스크한.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매독 같은 가을/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한쪽 다리에 찾아온다.’(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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