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강경파가 되는 이유를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라고 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집단 극화는 개인이 혼자 결정할 때보다 집단이 의사 결정을 할 때 더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는 경향을 말한다. 개인의 성격보다 집단성에서 강경 성향의 근원을 찾는다. 이들 강경파는 선천적 요인보다 상황에 따르는 경향이 많다.
사람들은 자존심에 위협이 느껴지면 강경해진다. 이런 현상은 집단적일 때 더 뚜렷이 나타난다. 온건한 사람이 모여 토론하면 더 온건해지고 강경한 사람이나 집단이 모여 토론하면 더 강경해지는 경향과 같다.
예컨대 특정 지역 사람끼리 모여 이야기하면 그 지역다운 것이 규범에 맞는 것으로 느끼게 되고 그쪽으로 더욱 치우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에 한 집단이 반대되는 집단과 대치되는 상황이 되면 정도는 더 심해진다. 자연스레 자기 논리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집단 규범에 더욱 치우치게 되고 상대도 마찬가지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양극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강경파를 자기 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특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강경파일수록 콤플렉스가 많다는 주장도 있다. 또 동물심리학자들의 경우 강경하다는 것을 공격성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 특히 정치 집단에는 강경파·온건파·중도파가 존재한다. 자칫 우유부단하게 들릴 수 있는 온건파와는 달리 강경파의 논리는 선명하고 화끈하게 보인다. 비굴하게 타협하느니 장렬히 산화하자는 식이다. 복잡한 현실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강경파의 주장은 듣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강경파는 거센 저항에 부딪칠 때 우회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문제는 뒤끝이 나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강경노선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는 역사적으로 많았다.
우선 떠오른 것은 병자호란의 치욕이다. 조선 인조 때 청나라가 조선에 형제관계에서 군신관계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당시 조정은 일전불사를 외치는 강경파(김상헌)가 청과 화친을 주장하는 온건파(최명길)보다 우세했다. 오랑캐와는 타협할 수 없다는 주장이 국제정치의 현실논리를 깔아 뭉갰다. 강경파가 주자학의 이상주의에 집착하면서 조선은 병자호란이라는 참변을 겪었다.
고려 말 정도전과 정몽주의 정쟁은 정권교체를 주장한 강경 개혁파와 체제내 개혁을 강조한 온건 개혁파와의 격돌이었다. 또 개화기 때 최익현과 김옥균의 대립은 철저한 외세배격과 극단적 급진개화 주장이 맞선 경우다.
1958년 자유당 정권의 국가보안법 날치기 파동이나 1979년 박정희 정권의 김영삼 의원 강제 제명 사건 등도 강경이 권력의 몰락을 재촉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무릇 정치는 상대방이 있다. 대화를 해야 한다. 협상이 필요하다. 상대방을 꺾고 죽이는 게 능사가 아니다. 물론 협상은 실리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전부를 차지할 수는 없다. 조금은 양보해야 한다. 상생하여야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작금 여야 강경파가 보여주는 각종 행태는 눈 뜨고 봐줄 수 없다. 대체적으로 강경파가 주도하는 정당은 허구헌 날 시끄럽다. 자중지란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지금 정치권 특히 민주당 강경파가 보여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거부는 정도와 상식을 넘어섰다. 민주당이 “당론 바꾸면 당도 죽고 국민도 죽는다”지만 되레 그 반대다. 계속 어깃장을 놓는 건 국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당리를 위해서다.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하도록 유도해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작전이다.
강경파는 잠깐 인기가 있을지 몰라도 후유증이 길다. 實(실)보단 虛(허)가 훨씬 많다는 얘기다. 민주당 강경파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린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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