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사에 얌체 같이 자기 이익만 챙기는 행동을 풍자하는 사자성어로 ‘합본작주(合本作酒)’라는 말이 있다.
중국 명나라 시절 두 친구가 만나 동업으로 술을 만들기로 결의했다. 이 때 갑이 을에게 말했다. “나는 물을 준비할 것이니, 그대는 쌀을 준비하시게.” 이에 을이 “그렇다면 어떻게 이익을 분배할 것인가”하고 물었다. “쌀이 익으면 물을 댄 나는 물을 가질 것이니, 나머지는 자네가 가지면 되지 않겠는가?”
결국 갑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물을 책임진 후 술이 완성되면 술을 취하고, 비싼 쌀을 내 놓은 상대방에게는 술의 찌꺼기라 할 수 있는 지게미를 주겠다는 발상이다.
여기서 유래한 합본작주(合本作酒-자본을 합쳐 술을 빚다)에는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몰염치한 행동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필자가 이 같은 중국 고사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흡사 한국도로공사가 갑이고, 인천의 주인인 인천시민이 을이라는 관계로 인천에서 진행되고 있는 고속도로 신설 논란을 꼬집기 위해서다.
경인고속도로에서 초기투자비의 3배 가까운 수익을 올리고도 40년 넘게 통행료를 받아 인천시민들의 소송 대상이 된 도로공사가 이번에는 인천시 남동구 서창과 장수 사이에 유료화 도로를 내겠다고 나서 이 구간을 통행하는 자가운전자와 인천대공원 이용자들의 복장이 터지게 하고 있다.
도공의 계획은 서울외곽순환도로 장수 분기점과 제2경인고속도로 서창 분기점까지 약 3.52km 구간에 새 도로를 내겠다는 것이다. 이 지역은 수도권에서 가장 교통 체증이 심한 곳 중 하나여서 새 길을 내는 것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도공의 본심이 인천지역의 만성 교통 체증을 해결하자는 게 아니라 여기에 톨게이트를 설치하고 돈벌이에 나서겠다는 데 있다. 더구나 이번에 계획한 도로는 인천 시민들의 대표적 휴식공간인 인천대공원 위를 지나게 된다.
인천시민들은 자신들이 낸 혈세로 만든 대공원 일부를 도공에 내 주고, 공사가 끝난 후에는 자기 동네를 통과하는 데 돈까지 내야 한다. 건강을 위해 대공원을 찾는 연 340만명의 시민들은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자동차 배기가스까지 마셔야 하는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앞의 얌체 중국인이 상대방이 쌀을 내 놓으면 물을 댄 자신이 술을 갖고, 쌀 주인에게 지게미를 주겠다고 한 것 보다 훨씬 더 부당한 거래를 하자는 게 도공의 전략이다.
더욱이 서창~장수 간에 새 도로를 놓고 여기에 톨게이트를 설치하면 그동안 서울외곽도로를 무료로 이용하던 운전자까지 요금을 내야 한다. 쌀을 제공하면 술지게미를 주는 게 아니라 주세만 떠넘기겠다는 심보다.
통행료가 아까우면 현재도 체증이 심각한 국도를 이용하라는 게 도공의 주장인 데 이 또한 불쾌하기 짝이 없다. 인천보다 상대적으로 아파트 가격이 비싼 부천의 중동·상동 사람들이 공짜로 드나드는 외곽순환도로에서 인천시민에게만은 꼭 돈을 받아야한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인고속도로도 결과적으로 돈을 내는 차량은 종점 구간인 인천을 경유하는 차들이다. 서울에서 부천까지는 요리 빠지고 저리 빠지는 틈이 있는 데 인천을 출발지나 종착지로 하면 지갑을 열어야 한다.
이 모든 게 인천사람들이 너무 순하기 때문에 항상 당하는 피해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대학의 특강에서 “여러분이 어렵게 등록금 인하 투쟁을 해왔는데, 등록금 철폐 투쟁을 왜 하지 않느냐”고 말해 논란을 빚고 있다. 도공의 ‘합본작주’ 작태를 지켜보며 인천시민들께 “왜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철폐 투쟁은 벌이지 않느냐”고 외치고 싶어진다.
이윤성 국회의원(한·인천 남동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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