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스케치여행] 내소사

잿빛 하늘이 계절을 덮고 있다. 북아현동, 수유리, 그리고 플라타너스 큰 잎이 뚝뚝 떨어지던 청파동에서 연탄불 갈고 살던 기억들이 어렴풋하다. 내변산 등줄기를 차오를 때 푸르던 잎들이 단풍들고 이젠 앙상한 겨울이 왔음을 비로소 실감한다. 관음봉에 올라서니 보이는 것이 모두 발밑이다. 나는 다소 삐딱하게 염라대왕 같은 세월 앞에 겁없이 냉소를 보낸다. 깐 놈의 시간에 구차할게 뭐람. 그런데 내소사로 가는 내리막길이 브레이크가 잡히질 않는다. 근엄하신 부처님을 배알하고 불일치한 삶의 용서를 빈다. 전나무 숲길 내려와 젓갈냄새 풍겨오는 곰소로 간다. 아, 낙조 아래 허름한 횟집, 가제미회에 쐐주 한잔이 나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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