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에 대한 단상

한미 FTA 비준 문제로 시끄럽던 2011년 정기국회는 한나라당의 비공개 본회의 날치기 처리로 결국 파행을 맞고 말았다. 굳이 ‘날치기’라는 격한 표현을 쓴 것은, 예정에도 없었고 여야간 협의도 없었던 기습적인 본회의 소집과, 30여분만에 FTA 비준안과 14개의 이행법안을 처리한 신속함, 그리고 국가간 조약을 비준하면서 사상 초유의 본회의 비공개 투표를 강행한 한나라당의 그날 집단행동이 매우 비상식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애초부터 이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18대 국회 내내 연말 정기국회는 본회의장 의장석을 둘러싼 점거와 몸싸움으로 점철됐고, 의정 사상 최다인 임기 중 5번의 직권상정을 기록했다. 한미 FTA 역시 예외 없이 그 과정을 밟고 말았다. 나는 이것을 매우 뼈아프게 생각한다.

 

한미 FTA 비준과 관련해서 나는 ‘선보완, 후비준’ 입장이었다. ‘투자자-국가제소제(ISD)’를 비롯해 이명박 정부와 미국 정부 간 협상과정에서 이익균형이 무너진 부분들을 보완해야 비준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여야가 충분히 토론하고 협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랬다. 한미 FTA 국회 비준을 올해 안에 꼭 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한미 FTA 국회 처리 이후 보수언론과 연구기관들은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서민들이 입게 될 피해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한미 FTA가 서민생활에 미칠 대표적인 피해사례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농업분야의 피해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우리 농산물 1천531개 품목 중에서 38%(576개)의 관세가 즉시 없어진다. 5년 이내엔 60%가 무관세가 되고, 10년 내에 나머지 모든 농축산물이 관세 없이 개방된다. 미국 농무부 경제연구소는, 미국산 농축산물의 대 한국 수출액이 연평균 19억3천만 달러, 대략 2조900억원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보건의료와 관련해서도 심각한 우려가 된다. 한미 FTA가 시행되면 가장 먼저 약값이 상승하고 국내 제약산업이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 피해는 물론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제약사들의 경우 대부분 외국에서 개발된 신약과 효능은 같고 값은 저렴한 복제약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한미 FTA의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조항에 따르면 복제약을 시판할 때 특허권자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특허소송이 해결될 때까지 복제약의 제조와 시판을 유보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복제약이 시판될 때까지 소비자는 비싼 오리지널 약을 사야 하며, 건강보험 재정에도 부담을 줘서 건강보험 체계를 흔들 수도 있다. 참고로, 지금까지 우리가 개발한 토종 신약은 모두 17개뿐인 반면, 미국 제약사가 가진 글로벌 신약은 줄잡아도 우리의 10배 이상이다.

 

이 외에도 ‘투자자-국가제소권(ISD)’,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 보상’ 조항 등으로 인해 우리 정부의 중소기업 우대정책이나 소상공인 지원정책 등 각종 공공정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한미 FTA로 인해 이익을 보는 분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익은 대기업에 집중되고, 피해는 농업과 소기업?소상공인, 서민들에게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한미 FTA는 우리 국민과 국가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중요한 조약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조약을 비준하면서 충분한 설명과 토론 없이, 국민적 동의 없이 밀어붙인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직권상정과 물리적 충돌 속에서 속전속결로 끝내버릴 일이었는가.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무엇 때문에 시한을 정해놓고 쫓기듯이 이를 처리하고 싶어했는가.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가 한미 FTA와 관련해서 미국과 재재협상을 할 방법은 없는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전면적으로 검토해 주기를 바란다. 물대포와 ‘명박산성’만으로는 이 성난 민심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정장선 국회의원(민·평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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