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1조 달러 시대

우리나라의 연간 무역 규모가 지난 5일 1조 달러를 돌파했다. 무역 1조 달러를 돌파한 나라가 세계에서 9번째라는 사실이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무역 1조 달러 클럽에 새롭게 가입한 국가가 우리나라가 처음이라는 사실은 참 대견하다.

 

해방 후 우리나라가 처음 수출한 상품은 소금과 해삼이었고, 1공화국시절 내내 중석, 생사, 흑연, 돼지털, 우뭇가사리 등이 주요 수출품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수출할 물품이 부족하여 사람이 직접 해외로 나가서 외화를 벌어야 하는 일도 벌어졌었다. 현재 국내 3D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쉽게 보고, 북한이 러시아로 벌목공을 보내 외화벌이 하는 것을 남의 이야기하듯 하지만, 과거에는 우리도 독일로 광부, 간호사들을 보내어 외화벌이를 해야 했었다.

 

우린 무역 진흥을 위해 정말 국민 모두가 매진한 나라이다. 60년대, 70년대에는 대통령이 매달 직접 수출진흥회의를 주제하고 연말이면 수출 목표 달성이 국가적 중대사로 논의됐었다. 이 시절에는 1천불 소득, 100억불 수출이란 구호를 거리에서 수시로 보았고, 수출을 많이 하는 분야에 관련 있는 대학의 전공학과가 곧 인기학과였다.

 

금융위기 후 처음 1조 달러 돌파

수출목표 달성을 위해 합판, 가발, 신발, 섬유제품 등을 하나라도 더 만들려고 구로동, 청계천의 열악한 환경에서 미싱을 돌리고 봉제 인형을 만들던 우리들의 누이들이 불가능해 보이던 100억불 수출, 1천억불 수출 목표를 달성하게 한 영웅들이다.

 

하지만 그 사이 전태일 열사, YH사건 등 산업화와 무역진흥의 역군들이 희생당하기도 하였다. 이들의 고귀한 희생은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유보되었던 민주화 달성의 물꼬를 튼 계기도 되었다.

 

1990년 이후에는 보다 민주화되고 세계화된 사회적 경제적 기반에서 전자, 통신,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제품 등이 주요 수출품이 되었다. 조선, TV, 모니터, 핸드폰, 반도체 등 세계 1등 제품도 하나씩 늘어나고, 점점 많은 한국 제품이 이제 값이 싸서 사는 물건이 아닌, 제값을 받고 세계의 소비자들이 기다리는 물건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FTA논란, 소통하며 해결하자

 

우리나라는 2010년 무역의존도(무역액을 GDP로 나눈 값)가 88.2%로 G20 국가 중 가장 높을 정도로 무역에 의존하는 나라이다.

 

미국, 일본, 브라질처럼 자국시장이 충분히 커서 무역의존도를 20% 전후로 유지해도 GDP가 충분히 클 수 있는 나라가 아닌 이상은 우리가 무역을 중요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무역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 사회적 문제에도 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 즉, 현재의 무역 확대가 GDP를 높이는 것에는 크게 기여했지만 갈수록 국내 고용 창출에 미치는 영향이 작아지고, 중소기업의 매출 확대도 개선되고 있지 않는 문제 같은 것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1조 달러를 넘어선 우리나라 무역의 방향도 또 한번 바뀌어야 할 때이다. 현재의 중국, 미국 등에 치우쳐 있는 무역 대상 국가를 확대해야 한다. 80년대의 신발, 섬유 등을 후발국가에 내어주었듯이 현재의 수출 효자 상품들에만 의존하지 않고, 바이오, 소프트웨어, 콘텐츠, 에너지, 금융, 서비스 등 새로운 산업에서 경쟁력을 키울 필요도 크다.

 

무역확대를 위해 역대 정부가 추진해오다가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FTA의 문제에 대해 상당수 국민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미국과의 FTA 추진이 매국을 하는 일이라는 주장과 FTA 반대론자들이 음모론을 꾸며 정부 전복을 꽤하고 있다는 상반된 주장이 진보와 보수 각자의 닫힌 공간에서 농성 중이다.

 

이들의 주장들이 각자의 공간이 아닌 국민의 광장으로 나와서, 농성하는 일방주장이 아닌 소통하는 공감대로 바뀌어야 한다. FTA이던 무역이던 이 모든 것이 국민이 편안하게 잘살게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진데, FTA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이희상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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