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마을을 드나들며 그 곳의 산과 들을 자주 접하고, 드문드문이지만 그 곳의 사람들과 봄·여름·가을·겨울을 함께 지내다보면 이것저것 주워듣는 얘기들이 꽤 된다.
어쩌면 소소하기도 하고, 오래된 기억들이라 듬성듬성 끊어지기도 하지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몸에 베인 이야기들이다. 귀농 귀촌이라 하여 새롭게 마을로 찾아든 이들 조차도 어느 사이엔가 말하는 품새며 몸짓이 그 곳의 사람들과 닮아있음을 본다.
그 모든 이야기가 아름답고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다툼과 소란, 반목이 없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아리기도 하지만, 그 것은 그 것대로 서로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흔적들이다. 마을의 이야기를 제대로 모아 보겠다고 산골 마을로 찾아든 지 1년여가 지나면서, 언제부턴가 그런 이야기를 그저 흘려보내지 못하는 막연한 궁리가 똬리를 틀게 됐다.
지난 일요일 산골 마을의 오래된 문 닫은 학교의 교실 한 칸을 내어 ‘마을 이야기 박물관’의 문을 열면서, 마음 한 켠의 실타래가 조금은 풀어지는 듯도 싶다.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들
이야기 귀동냥을 다닌답시고 마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지만, 그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게으른 탓이 크지만, 외지에서 찾아든 근본도 모르는 낯선 이에게 선뜻 입을 열지 않음은 인지상정이다.
마을 대소사에 이렇게 저렇게 얼굴을 들이밀며 서로의 탐색이 어지간히 끝나고, 조금은 이물 없어지기 시작하면서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속내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오래 전 댐을 막아 수몰된 고향마을을 등지고 갖은 고생하며 새로 땅을 일구고, 한 때 제법 번듯한 방앗간도 가꾸며 마을 이장일도 팔 걷어 부치고 나섰으나, 지금은 늙고 병들어 찾아오는 이 없이 두 내외분만 덩그러니 남아 오래 전 뜯겨나간 방앗간 터를 지키고 있는 이야기, 언젠가는 대처로 가고 싶은 새색시의 꿍꿍이속을 감추고 시부모를 설득해 어렵사리 옆 마을로 이사 왔으나, 그나마도 가난과 애틋한 정을 못 이겨 한 평생 산골 마을을 나서보지 못한 채, 이제는 할아버지의 병수발을 받으며 마실 조차 맘껏 못 다니는 병든 몸이 된 이야기 등 어느 하나 콧등이 시큰하지 않은 이야기가 없다. 도회지에서 간간히 방송에서나 접했을 법한 이야기들을 산골 마을 아랫목에서 무릎을 맛 대고 듣다보면 자괴감, 회환, 분노 등 정리되지 않는 상념들이 마구 뒤엉켜 꼬리를 문다.
왜 이리도 우리네 마을은 가난한가? 왜 우리네 마을은 이렇듯 짠하기만 한가? 한때는 그것이 싫었고 불편했다. 지금도 마을길을 들어서는 심사가 그리 온전한 것만은 아닌 것이 사실이다. 거기엔 뭔가 알 수 없는 부채감의 무게가 놓여 있다.
여전히 살아있는 우리의 이야기
모두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앞가림에 전전긍긍하며 ‘크고, 빠르고, 앞으로’ 가려는 세태 속에서, ‘작고, 느리고, 뒤로’ 가는 가치를 내세우는 것이 부질없는 객기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곳의 이야기가 화석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는 우리의 이야기임을 곱씹어 보고 싶다.
지난 몇 달간 젊은 작가들의 힘을 빌어, 마을의 이야기를 ‘마을잡지’와 ‘마을달력’, 동화책 등으로 담아 가꾸고, 마을에 사는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담겨질 ‘이야기 상자’를 나눠드렸다.
‘이야기 상자’가 그득해지고 서로의 기억을 나눠 가질 때, 우리네 마을이 오래된 미래로 새롭게 충전되어 다가올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늦은 밤 산골 마을 ‘마을 이야기 박물관’을 나선다.
박명학 예술과마을 네트워크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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