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단상]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9명이 도시에 산다. 전체 국토에서 도시가 차지하는 비율은 16.5%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거주하는 인구는 4천 518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90%에 달한다. (2010년 국토해양부 통계) 이제 도시는 대다수 국민이 사는 주거공간이자 생활터전이 되고 있다.
도시는 단순히 사람이 모여 사는 주거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20세기가 국가 간의 경쟁이었다면, 21세기는 도시 간의 경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도시의 경쟁력이 해당 국민의 삶의 질과 생산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도시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도시에 대한 사회 전반의 고민은 아직 미흡한 것 같다. 도시의 기능이나 역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메가 도시, 즉 거대도시를 양산해 왔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도시발전의 효율성을 추구하며 크고 넓은 도시를 지향해 왔다. 우리나라는 100만 명 이상의 도시가 9개에 달하고 갈수록 그 숫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큰 것이 좋은 것’이라는 산업사회 특유의 사고가 ‘양’이 ‘질’을 압도하고 있다.
반면에 전통적인 유럽의 도시국가들은 거대도시보다 강소도시를 선호한다. 우리와 인구·면적이 비슷한 영국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인구 6천 200만 명인 영국은 100만 이상 도시가 런던(700만 명)과 버밍엄(100만 명) 두 개에 불과하다. 글래스고, 쉐필드, 리버풀 등 우리 귀에 익숙한 도시 대부분은 50만 명 안팎이다. 영국의 국토면적은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약간 넓지만, 소도시 위주의 국가발전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소도시 모델은 풍부한 녹지를 기반으로 특성화된 도시발전으로 이어졌다.
사정은 인구 9천만 명의 독일도 비슷하다. 베를린과 함부르크, 뮌헨, 쾰른 등 4개만이 100만 명을 넘을 뿐이다. 행정·경제의 중심지 역할은 거대도시에 맡기되 대다수 도시는 작지만 강한 도시, 즉 ‘강소도시’로 경쟁력을 키운다.
5년 전 방문한 프랑스의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인구 4만 명에 불과했지만,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보존녹지가 많아 정주환경이 좋고 법인세 면제, 중앙 및 지방정부의 과감한 지원을 통해 명품 도시로 탄생한 것이다.
미국에서 성장률이 가장 빠른 캘리포니아의 어바인이나 일본에서 수년째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된 쓰구바시 등도 인구 20만 명 안팎에 불과하다. 결코, 많은 인구가 도시의 경쟁력이나 삶의 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실제로 영국의 하워드(Howard. Sir Ebenzer)와 같은 도시정책 전문가들은 한 도시당 인구 25만~30만 명이 도시계획적인 측면에서 가장 적정한 도시인구로 본다. 30만 명을 넘어서면 지하도, 고가도로, 매머드 광장 등 대규모 인프라가 필요하고 이는 곧바로 과밀화된 도시환경으로 이어지면서 환경오염, 차량정체 등 각종 도시문제를 야기시킨다.
주민과의 직접적인 소통도 어렵다. 개인적인 경험이 이를 반증한다.
시장 취임 이후 직접 주민을 만나 민원을 해결하는 ‘찾아가는 시장실’을 운영하면서 한 달에 두 번씩 각 동을 순회하고 있다. 의왕은 모두 6개 동이 있어 3개월에 한 번꼴로 각 동 주민들이 시장과 직접 만나 민원을 지역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기회를 얻고 있다. 이에 대한 주민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그러나 적정인구를 넘어서면 시장과 주민의 직접 소통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도시인구가 많아질수록 주민자치, 지방자치의 본질과 갈수록 멀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사회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규모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규모와 상관없는 지역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중요하다. 작고 강한 도시를 키우고 발굴하여 도시와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의 도시발전 모델을 기대한다.
김 성 제 의왕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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