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 교회의 도덕적 책임과 의무 -
지금 전 세계는 신자유주의가 팽배해 가고 있습니다.
모든 기업들이 보다 자유롭게 경쟁하면서 때론 국가의 개입까지도 배제하고 말 그대로 아무 규제없이 능력대로 사업을 해서 이익을 창출해 내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세계 자유시장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기업의 가장 큰 성공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업의 발전을 통해서 소속된 많은 사람들이 보다 좋은 환경과 양질의 삶을 추구한다면 최고의 성공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이 국민 전체의 비율로 보면 너무 적은 수이고 이 기업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 비율은 많지만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것은 빈부의 격차가 상상도 못하게 크게 벌어진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기업풍토는 승자가 독식할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장이기 때문에 기업가의 도덕적 책무에 호소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와 함께 치열한 경쟁을 하다 이익을 많이 거두면 대기업에게만 부가 축적이 되고 손해를 보면 얄짤없이 협력업체에 그 큰 손실을 떠넘기는 말 그대로 잔인한 기업들이 우리 나라에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물론 지금이야 말로 자유롭고 자기 능력에 의해서 부를 축적하고 양질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하지만 사회구조가 그렇지 못한데 이유가 있습니다.
즉 열심히 노력해도 자기 능력이 이를 따를 수 없거나 여러 악 조건들이 결국은 실패의 연속으로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 국민 비율로 보면 약 60 %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미디어는 아주 적은 수의 성공률을 많은이들이 성공할 수 있다고 유도합니다.
최인호 작가의 ‘상도’에서 거상 임상옥이 부를 축적하여 빈민구제로 평생을 지낸 것을 감동적으로 표현한 것은 현대의 기업가들이 주목할 일이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엔 너무 아름다운 운동이 서민들 속에서 요원의 불길 같이 타오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자선운동 단체가 우리도 같이 잘 살아보자는 운동입니다. 여기에 그래도 가진 사람들이 앞장서 주기를 바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운동을 제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운동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실천해야 하는지 외국의 기업가들이 자기의 이익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지 그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자명하게 보여지게 됩니다. 바로 교회가 이런 격차를 줄여가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세금도 면제되는 특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복지를 위해서 교회는 여러 모양으로 국가가 요구하는 많은 조건들을 어느 단체보다도 잘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위탁받는 교회는 정부의 지원금만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있고 이 보조금으로 교회가 덕을 보는 파렴치한 교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교회가 다 하는 것 마냥 선전을 합니다. 그런데 수녀들이 운영하는 어느 노인요양소는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수녀들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모금을 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어느 시설 보다도 더 잘 운영하고 있음을 봅니다. 의외로 많은 독지가들이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세금도 내지 않는 단체이기 때문에 적어도 1년 예산에서 무조건 50% 즉 수입의 반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복지 시설이나 외진 곳을 위해 처치 오블리주(교회의 도덕적 책임과 의무) 운동을 전개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받고 있습니다.
사랑은 인간의 부족함과 한계 때문에 겪는 고통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결국 상대방을 살립니다. 지금 나는 내 삶의 기쁨을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에서 참 기쁨을 느끼는 성숙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것이 처치 오블리주 운동입니다.
최재용 신부·천주교 수원대리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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