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행정의 잘못된 만남

[문화카페]

연초가 되어 그간 간간히 근황을 전해 듣던 몇몇 작가들이나 단체들의 새해 구상을 접하다 보면, 그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공적인 지원 제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본다.

 

그리고 거기서 좀더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김없이 공적 지원 제도의 이런 저런 얽매임에 대한 하소연들을 듣게 되곤 한다. 속 시원한 해결책을 찾아 막연한 궁리를 함께 해보지만 별무 대책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하고 싶은 작업에 작은 보탬이나마 받게 됐음을 다행으로 여기라고 하면서도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때 오랜 기간 예술행정 현장의 일을 업으로 해 온 사람으로서 그런 얘기들을 듣다보면, 민망함과 자괴감을 숨길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솔직히 최근 3~4년 사이엔 좀 해도 심하다 할 정도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는 한 듯하다.

 

도대체 우리나라 모든 예술가를 공무원으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그 복잡한 국가 예산회계 체제와 항목에 맞춰 자금의 집행계획을 만들어 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 더해 무슨 ‘국가문화예술지원관리시스템’이라는 근거도 애매하고 그 쓰임새도 빈약한 맹목적 전산화의 분칠을 덧씌워 지원받는 예술가를 자료 입력 요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등 별별 일들을 다 겪게 된단다.

국가문화예술지원 예술가 옭매

 

더욱이 해야 되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은 또 뭐 그리 많은지, 어딘가에서 보내 온 지원금 집행 매뉴얼이란 것을 보니, 온갖 도표에 깨알 같은 글씨를 채워 넣은 책 한권 분량이기도 하다. 그 뿐이 아니라 일 년 내내 시도 때도 없이 이것저것 자료제출 요구에 시달리기까지를 각오해야 되는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이전에 한 번이라도 지원을 받아 본 왠만한 예술가와 단체는 굶어죽어도 다시는 그 짓(?)을 못하겠노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정도다.

 

더욱 가관인 것은 지원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나 지자체, 공공 기관 등의 일선 공무원과 직원들조차도 그 얽히고설킨 난맥상을 풀어낼 길이 없다보니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엄두도 못 내고 허울 좋은 정책적 성과평가의 환상만을 쫓거나 그저 속수무책 앵무새 같은 얘기만을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라고들 한다.

 

그러면서 예술과 행정은 서로의 잘못된 만남을 탓하며 속절없는 피로도만을 높여가고 있다. 어찌 보면 모두들 제 정신이 아닌 아노미 상태에 빠져있는 듯도 싶다.

예술행정의 좋은취지 되새겨봐야

 

어떤 분야든 공적 제도의 틀 속에 담겨질 때, 일정 부분 규제적 요소가 개입될 수 있을 것이고, 문화예술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작금의 문화예술 지원 제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 선을 넘어서고 있다. 마치 모기를 보고 칼을 빼는 견문발검(見蚊拔劍)의 형국이자 빈대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자고 접어드는 격이다.

 

거기엔 어떠한 고민의 흔적도 보이질 않는다. 시키니깐 하고, 하라니깐 마지못해 하지만 그러면서도 모든 책임은 현장으로 넘기려는 무사안일과 기계적 문서행정만이 보일 뿐이다. 시키고 하라는 사람도 문제지만, 시킨다고 하고 한다는 모양새조차 고작 그 것 밖에 안 되는 사람들은 더욱 문제다.

 

모든 것은 태도에서 비롯된다. 특히 문화예술의 공적 지원제도는 그 방식과 규모 등 제도 운영상의 문제 보다는 예술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예술행정을 왜 하는지에 대한 태도가 어떠한지로 그 실제 성과가 가늠될 수 있음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와 방식도 태도가 올바르지 못하다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을 진데, 하물며 별반 좋지도 못한 취지와 방식에 태도마저 그러니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박명학 예술과마을 네트워크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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