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산실] 미술과 차, 그리고 안마…장르없는 작가 김석용

“예술은 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리 멀지 않아요. 좋은 잔에 차를 마시거나 일부러 시간 내 영화를 보며 느끼는 즐거움, 그게 모두 삶 속 예술이죠.”

 

김석용(54)을 특정 장르의 작가로 규정짓기는 어렵다. 도자기를 굽고 그림을 그리지만, 보이는 게다가 아니다. 차를 마시고 안마를 하며 느릿하게 삶을 음미하자고 말한다. 운동선수를 꿈꾸던 유년기와 허리 디스크로 앓아온 투병기간을 거쳐 스스로 기(氣)와 마사지의 원리를 터득하기까지, 그의 삶을 통괄한 명제가 하나 있다. 그에게는, 누구 말마따나, ‘내 삶은 예술, 예술은 내 삶’이라는 것.

 

 

■독특한 안마사, 생활이 곧 예술이다

김석용은 현재 안마사로 활동 중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오피스텔을 안마소로 차리고 환자를 받은 지 2년째다. 실력이 입소문을 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 연예인들이 단골손님이고, 지방에서 안마를 받으러 올라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안마소는 조금 ‘이상’하다. 안마용 장비 대신 알록다록한 부엉이와 도깨비가 창과 벽에 줄지어 늘어섰고, 합판과 박스, 물감 따위가 다른 한편에 잔뜩 쌓여 있다. 또 다른 모퉁이엔 모과차, 가시오가피액 등이 담긴 병이 모였다.

 

“중요한 건 다 공짜에요. 공기, 물, 소리, 빛, 정신, 이런 것들 말이죠. 그중 안마는 정신적인 거라 할 수 있죠. 척추의 자율신경계가 분산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아픈 건데, 이건 꼭 몸의 문제라기보단 스트레스라든지, 정신적인 것과 얽혀 있거든요. 안마는 몸과 정신을 풀어준다고 할까요, 정신적 배경을 바로잡아주는 거에요.”

 

안마를 정신을 해방해, 행복을 전달하는 ‘건강예술’로 생각하는 그는, 안마에서의 재능을 살려 안마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금속과 나무, 흙을 다루는 솜씨도 상당하다. 덕분에 안마소도 안마소라기보단 작업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정식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자유롭게 예술을 이야기하며, 생활의 영역과 예술의 세계를 거리낌 없이 뒤섞는다.

 

■운동과 디스크를 지나 예술에 이르기까지

어린 시절 유도와 권투를 하며 운동선수를 꿈꾸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갑작스레 허리디스크를 앓게 된다. 엎드려 누워서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던 1년, 이후로도 일상생활이 힘들던 4년 등 5년간의 투병기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기간이었지만, 자신의 흥미와 재능을 발견한 기간이기도 하다.

 

“아파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웬걸, 재밌는데다 제법 잘하더라고요. 또 수술 대신 꾸준히 지압을 받았고, 이후 걷기, 등산 등의 ‘자가치료’로 디스크를 완치했어요. 인위적인 것보단 느려도 자연스러운 게 우리 몸에 맞는 거라 여기게 됐죠.”

 

병이 완쾌된 후, 화학적인 것이 몸을 해롭게 한다고 여기게 된 그는 플라스틱 그릇 대신해 직접 그릇을 빚고, 시중의 음료수를 대신해 차를 만들며 90년대 중반께 고향인 안양에 카페를 차린다. 아울러 골판지, 합판부터 버려진 냄비, 병뚜껑 등을 통해 도깨비, 부엉이 등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 카페에 전시한다. 엉뚱하지만, 재기 발랄한 작품들이었다. 이와 함께 디스크 치료 당시 안마사에게 배운 기술을 토대로 무료로 안마를 해주기 시작한다.

 

그의 ‘기이한’ 카페가 서서히 알려지면서, 미술계 관계자들이 그의 작가성을 알아보고 96년 첫 개인전을 열게 됐다. 뒤이어 스톤앤워터가 기획한 ‘안양천프로젝트’(2004년), ‘느리게 살기-안마 퍼포먼스+차 마시기’(2009년)에 참여하며 독특한 작가 행로를 걷는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에게 직접 담은 차를 대접하며 안마를 해주는 퍼포먼스가 인기를 끌면서, 축제와 전시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안마와 차가 있는 갤러리를 꿈꾸며

2년여전 카페를 접고, 안마를 하기 시작했지만, 그에게 큰 변화는 없다.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삶 속 예술을 전달하는 방식이 바뀐 것뿐이다.

 

“디스크에 걸렸던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에요.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과거의 방식대로 느리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벽화를 그리고, 토기를 구웠던 옛날, 예술은 그대로 삶이었어요. 저 역시 예술을 삶 속에 녹아내리며 살고 싶습니다.”

 

그이 꿈은 양평에 개인 갤러리를 짓는 것. 그곳에서 직접 만든 그릇과 찻잔, 장신구와 그림 등 작품을 전시하며 관람객과 차를 마시고 안마를 하려 한다. 김석용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상이 보다 예술이 될 때, 혹은 그 반대일 때 꿈은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다.

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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