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의 도시이야기]
인간과 마찬가지로 요즘 우리나라 도시에도 성형(成形) 바람이 불고 있다. 도시 내에 산재해 있는 지저분하고 너절한 것들을 개선하고 그럴싸한 건물이나 구조물 등으로 기존의 도시 이미지를 좀 더 예쁘고 보기 좋게 만들겠다는데 딱히 뭐라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인간의 성형이 그러하듯 도시에서의 자연미가 조금 없어 보이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도시의 성형을 위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랜드마크(landmark)일 것이다. 어떤 곳에 가면 어떤 것이 멋있더라 정도의 가십거리나 어디 가면 꼭 무엇을 보아라 하는 식의 애정 어린 권유도 역시 랜드마크라는 존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도시에서의 랜드마크는 역사상 무수히 존재한다. 선사시대의 고인돌 같은 거석(巨石)들도 훌륭한 랜드마크였으며 고대 바빌론 지역의 지구라트(ziggurat),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오벨리스크, 혹은 고대 7대 불가사의에 해당하는 휘황찬란한 건축물들은 물론, 금빛 광채를 번쩍이며 언덕 위에 당당하게 서 있던 아크로폴리스 등도 모두 도시의 상징인 동시에 그 도시의 존재이유를 설명해주는 모뉴멘트이자 랜드마크로 기억되고 있다.
로마의 개선문이나 칼럼(column) 같은 이른바 로드 아키텍춰(road architecture)도 전쟁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귀국하는 개선 군대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훌륭한 랜드마크였다. 중세의 기독교적 가치를 표현하는 종탑이나 교회 첨탑을 비롯해 성 마르코 성당 광장 <사진> 앞에 치솟은 시계탑(그림) 또한 복잡한 중세 도시에서 당당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던 랜드마크였음에 틀림없다. 사진>
이때까지만 해도 도시에는 그럴듯한 랜드마크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도시 거주민들은 애정과 애증을 동반한 채 도시 내의 존재이유로서 그것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물론 그 수효도 그리 많지 않았다.
눈에 잘 띠기 위해서 혹은 그 도시만의 의미를 지니는 존재이유이기 위해서는 너무 많아도 안될 법이었다. 이른바 적절한 희소성의 랜드마크였다. 그들은 랜드마크를 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본질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도시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랜드마크의 끝자락에 시선을 보내면서 자신이 움직여야 하는 방향성(orientation)을 가늠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본과 기계와 공장 등으로 도시를 채워나가기 시작한 근대 이후부터는 그다지 볼 만한 랜드마크도 존재하지 않았을 뿐더러 도시 거주민 모두가 공감하는 존재이유로서의 대상을 찾아보기도 어려워졌다.
철골 덩어리의 에펠 탑이나 식민지로부터 약탈해 온 오벨리스크 같은 것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채 치솟아 오르기에 급급하였으며 급기야는 시카고나 맨하턴 같이 엄청난 수의 초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는 높이 무한경쟁 시대를 초래하고 말았다. 높기만 하면 혹은 많기만 하면 능사가 아닌 것을 이 때 알아차려야 했다.
바벨탑이 무너진 것은 단지 기술적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존재이유만으로도 충분한 높이와 의미가 있을진대, 너무 많은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내고 동시에 너무 보여주기에만 급급한 철없는 인간의 행동에 신(神) 조차 용서하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김영훈 대진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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