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시집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시력 40년을 넘긴 시인 이시영(63·사진)의 열두번째 시집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창비刊)는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현실과 밀착된 시편들이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긴다.

시인은 간명한 언어에 담긴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밀도 높은 단형 서정시, 삶의 애잔한 풍경 속에 서정과 서사가 어우러진 산문시, 책의 한 대목이나 신문기사를 옮겨 적거나 재구성한 인용시 등 다양한 형식을 선보이며 개성적인 시세계를 펼쳐 보인다.

 

특히 ‘참여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철거민 다섯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참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현장, 구제역 파동으로 100여 마리의 소를 살처분해야 했던 한 축산농가의 비극 등 참담한 현실을 꿰뚫어보고, 나아가 ‘하루 16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인도의 어린이노동자들,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유혈 진압과 ‘인간 사냥’이 자행되던 2011년의 리비아 사태 등 전지구적으로 확장되면서 야만과 불의,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의 뒷모습을 담담하게 그렸다.

 

또 문익환 목사, 오장환·이용악·김남주·김지하 시인 등 아릿한 기억 속에서 살아숨쉬는 인물들을 다시금 불러낸 인물시편들은 은근한 미소를 자아내며 읽는 재미와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밖에도 시인의 기억 한켠에는 또 가족과 이웃들의 애틋한 사연과 고향 마을의 아늑한 풍경이 그려진다. 오십년 저편의 추억 속으로 잠겨드는 시인의 마음은 한없이 따스하기만 하다.

 

원고를 넘기기 전 교정을 세번 봤다는 이시영 시인은 “어떤 것들은 들어내고, 어떤 것은 들어냈다가 다시 넣었다. ‘인용시’들이 많이 줄었으나 아직도 적잖은 분량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류의 작품들이 시가 아니라고 타매하기도 하지만, 나는 시가 아니라도 좋으니 이런 작업을 통해서 감추어진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난 시대의 ‘참여시인’이란 명칭이 좋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작품들이 미미하지만 ‘시적인 것’의 발현으로서도 이 오랜 고독의 시간을 잘 견뎌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194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수학한 시인은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학과 초빙교수로 재직중이며,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값 8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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