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레토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일명 20:80 법칙이라고 부르는 이 이론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비롯된다는 것으로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Vilfredo Pareto)가 개미의 집단행동 양태를 관찰하다가 알게 된 일종의 가설이다.
일견 비과학적 논리처럼 보이면서도 제법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재미있는 이론이기도 하다.
도시에서의 중심과 주변의 관계에서도 파레토 법칙이 어느 정도 적용되고 있는 듯하다. 도시가 지니는 80%의 매력과 특징은 도시 내에 존재하는 20% 정도의 중심시설이나 공간이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긴 우리가 어떤 도시를 감상하거나 설명할 때 도시의 모든 시설이나 공간을 들먹거리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사진 폴더에 저장되는 많은 것들은 기념물이나 역사적 건조물 혹은 고층건물로 휘황찬란한 중심가의 도시 풍경 등이 대부분이다.
이것들이 실제로 도시의 중심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특정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도시만의 특징을 결정하는 몇몇 중심시설이나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그다지 반론은 없을 것이다.
도시에서의 팔레토적 중심과 주변의 관계는 시기가 앞설수록 그리고 규모가 크지 않을수록 더욱 명쾌하게 나타난다. 선사시대나 고대의 도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화려한 통치자의 주거나 곡물 창고 혹은 사원 등이 그 마을이나 도시의 중심이었음은 분명하며 이것들이 그 도시의 80%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스 등지에서는 신전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공공시설들이 중심이었으며 중세 도시조차 교회 종탑과 파비스라는 앞뜰만으로도 그 도시의 이미지와 특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심지어 기독교를 앞세워 세계를 지배하려던 스페인의 식민도시에서조차 위풍당당한 교회와 통치자 행정 공간 등으로 이루어진 도시 중심이 나머지 원주민의 모든 생활과 산업을 지배하고 있었다.
고작 20% 정도에도 못 미치는 도시 시설이나 공간이 주변의 80%는 물론 그 도시의 색깔과 존재이유를 자연스럽게 대변하고 있던 셈이다.
고대 로마나 근대 이후의 산업도시는 좀 사정이 다르다. 거대 기념물이 도시에 덧칠을 해버린 로마의 수도는 이른바 과잉 중심의 표본이었으며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공간과 건물이 스스로 중심이기를 자처하는 바람에 오히려 혼란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건물이나 공간 하나하나가 예술적인 로마는 그나마 봐줄만하였다.
빈민들의 로우 하우스를 배경으로 연기를 뿜어대는 근대도시의 산업시설이 고용주의 저택과 함께 도시의 중심이기를 강변할 때부터 20%에도 못 미치는 절대 소수가 도시의 나머지를 책임지려하더니만 요즘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고층건물이나 중심구역 혹은 중심을 가장한 부도심 등이 최고라는 수식어를 등에 업고 여기저기 넘쳐나면서 오히려 80%와 20%가 역전되는 중심 과잉 도시가 되어 버리고 만 느낌이다.
이제는 어떤 식으로라도 중심이 되지 못하면 열악함과 미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비참한 열등생이 될지도 모르는 판이다.
너도 나도 중심이기를 원하다보니 20%에 속해있는 개미와 80%에 속해있어야 할 개미들이 다들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하긴 애꿎은 개미만 탓할 일은 아니다.
김영훈 대진대 건축공학과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