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해태’가 너무 많다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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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水와 갈去로 구성된 法이란 한자는 정자(正字)가 아니었다고 한다. 전설의 동물 ‘해치(해태·해타)’를 뜻하는 글자가 去위에 더 있었다. 해치는 사람의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신령스러운 재주가 있어 성군을 도와 현명한 일을 많이 하였고, 만일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 뿔로 받아 넘긴다는 상상의 동물을 뜻한다.

 

기록마다 모습이 다르지만 머리가 사자 또는 양의 모습이다. 기린처럼 머리에 뿔이 있는데 몸 전체가 비늘로 덮였다. 겨드랑이에는 날개를 닮은 깃털이 나 있는 것으로 전한다. 해치는 2008년 5월 13일 서울시의 상징 동물로 선정됐다.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기 때문에 해치는 재판과 관계지어졌고, 후대에는 해치의 모습이 재판관의 옷에 그려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을 감찰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헌부의 수장, 대사헌의 관복 흉배에 해치를 새겼다. 사헌부를 지켜주는 상징인 셈이다. 오늘날에도 국회의사당과 대검찰청 앞에 해치상이 세워져 있다. 해치처럼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어 항상 경계하며 정의의 편에 서서 법을 공정하게 처리하라는 뜻이겠다.

 

중국 책 <論衡> 은 해치가 ‘죄 있음을 알아채는 본성이 있다(性知有罪)’고 하였다. 고대 중국인들은 헛갈리는 사안을 재판할 때 판단을 하늘에 맡겼다고 한다. 소송 쌍방은 자기의 해치를 데리고 나가 제기(祭器)에 자신의 결백 맹서를 넣고 신판(神判)을 기다렸다. 신판 결과 패한 자는 신을 속인 것이 죄가 되어 제기, 해치와 함께 강물에 던져졌다. 법의 정자(正字)에서 해치 밑에 있는 去의 윗부분은 패소자, 밑부분은 뚜껑을 깨트려 없앤 패소자의 제기를 의미한다.

‘죄 짓고 못 산다’는데

 

패소자를 커다란 짐승 가죽에 싸서 강물에 던지기도 했다. 춘추시대 말 吳나라 왕 부차(夫差)는 미녀 서시(西施)에 홀린 자신을 간하는 충신 오자서(吳子胥)에게 자결을 명령했다. 오자서가 저주의 말을 남기고 죽자 부차는 화가 나 시신을 말가죽 자루에 싸서 강에 버렸다. 이렇듯 법은 원래 죄인에 대한 형벌을 의미했다.

 

罪의 고자(古字)는 自 밑에 辛을 썼다. 自는 정면에서 본 코의 형태, 辛은 살갗에 먹물을 들일 때 쓰는 대침이다. 고대에는 먹물을 죄인의 코에 들였다. 죄인 얼굴에 죄명을 입묵(入墨)하는 형벌이다. 갑골문 발견 전까지 한자 해석의 권위였던 <설문해자(說文解字)> 는 죄를 ‘물고기를 잡으려고 대로 만든 그물’이라고 풀이했다. <시경(詩經)> 에 ‘죄의 그물’이라는 말이 나온다. 죄 짓고 못 산다는 우리 속담과 같은 맥락이다.

 

판사의 判은 제사에 희생물로 쓰이는 소(牛)를 칼(刀)로 양분하는 형상이다. 판단한다는 뜻이 여기서 나왔다. 후에 신물(信物)을 양분하여 증거로 삼는 관습이 생기자 반쪽이라는 뜻도 생겼다. ‘반쪽만 보고 판단한다’는 판결이 그래서 나오는 모양이다. 작금 법관들의 이상한 편향 판결을 놓고 찬반으로 갈라져 논란이 분분한데 ‘눈 먼 해태’는 ‘공정하지 않은 판결’을 야유하는 말이다.

유전무죄 무권유죄

 

전설의 동물 해치는 부정한 존재를 판별하여 자신의 뿔로 처벌한다는 정의의 상징이다. 따라서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공평하고 해치처럼 정의로워야 하는 것이 법의 정신이다. 물처럼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법칙과 해치처럼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부정한 자는 처벌돼야 한다는 법의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런데 괴이한 판결이 자꾸 나온다.

 

풍자어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가 국어사전에 오를 지경에 이르렀다. 사법부에 ‘눈 먼 해태’가 자꾸 등장해서는 안 되는데 야단났다. 지금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한가.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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