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친구들과 놀다 집으로 돌아온 아르베는 여느 때와 달리 어수선한 분위기에 갸웃거린다. 심각한 얼굴의 사람들이 집앞에서 웅성거리고, 구급차가 누군가를 싣고 떠나는데 엄마는 안방에 틀어박혀 있고, 동생 깡땡은 영문을 모르는 듯하다. 아르베는 이윽고 심장마비로 아빠가 갑작스레 떠났고, 이제 아빠를 영영 볼 수 없게 됐음을 알게 된다.
책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소년 아르베의 심리를 독특하게 관찰하고 구성했다. 일반적인 소년소설이 주인공의 성장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과 달리 ‘아르베’는 글과 그림이 결합해, 독특한 독법을 제시한다. 사람들 틈에 끼어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 아르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변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존재감이 약한 소심하고 내성적인 소년은, 자기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그 길로 걸어가게 된다. 키가 작아 관대에 올려진 아빠를 볼 수조차 없는 아르베는 생전 다정했던 아빠를 떠올리고, 이는 26개의 다양한 표정으로 그려진다.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이라 할 수 있는 책은 소년이 슬픔을 견디는 모습을 애잔하면서도 진심 어린 태도로 담았다. 중요한 장면에서는 오히려 글을 배제하고 희미한 그림으로만 다루기도 했다. 아빠를 장례식장으로 보낸 직후 사람들이 하나씩 흩어지고 마지막으로 혼자 남을 때까지 엄마의 심리가 네 장면에 걸쳐 화면으로 보여지고, 아르베의 모습은 점점 지워진다. 아빠의 죽음을 감당하기엔 어린 소년의 심리는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여백과 틈새를 통해 더욱 깊숙이 다가온다. 단조로워 보이는 선과 무채색에 가까운 톤도 읽는 이의 심리적 개입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
깊이 있는 철학적 주제는 낯선 접근방식을 통해 독특하고도 빼어난 문학작품으로 탄생했다. 또렷하지 않아도 어딘가 숨겨진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켜 책장을 덮고도 한참을 생각하게 하는 여운을 지녔다. 글, 그림 모두 캐나다 최고 권위 상인 캐나다연방총독상을 받은 작품이다. 값 9천800원
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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