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7세 미만 어린이가 입장 가능한 공연장이 있다. 게다가 ‘공짜’다. 어느 누가 싫다하겠는가. 그래서 5년째 매공연마다 매진행렬을 기록하며 한국 공연계 새로운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바로 수원 최초 기업지원 공연장 DSD삼호아트센터(이사장 이윤희)다.
격식과 매너, 그리고 조용함까지 요구되는 클래식 공연장에 ‘8세 미만의 어린이는 입장을 불허한다’라는 일반적인 법칙을 깨고 누가 꼬마관객들을 초대한 것일까. 어린이전용극장도 아닌데 말이다.
이는 이윤희 이사장의 작품이다. 그는 왜 무모한 시도를 했던 것일까. 무슨 이유에서 위험한 도전을 한 것일까.
지난 달 28일 인계동 삼호아트센터 공연장에서 만나 이윤희 이사장의 답변은 간단하면서도 명쾌했다.
# 음악교육도 예술이다
“‘경험은 길을 안내해 주는 램프다’는 카뮈의 말처럼 어린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주고 인생의 작은 램프가 되고 싶어요. 초창기 때, 어린 아이들 입장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관람객들도 있었고 공연 도중 출연진들이 아이들의 돌발행동에 당황하기도 하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죠.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삼호아트센터에서만큼은 어려서부터 완전한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을 목표로 했을 뿐입니다.”
연극, 뮤지컬, 콘서트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공연마저도 관람등급을 매겨놓고 나이제한으로 관람객을 골라(?) 받는 우리나라 공연계에 이윤희 이사장의 시도는 파격 그 자체였다. 소위 말해 ‘꼬맹이 녀석들이’ 클래식 연주를 듣고 이해를 하든 못하든,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알든 모르든 그냥 공연장의 문을 활짝 열고 문턱을 낮춘 것. 공연계에서는 모험이라고 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삼호아트센터를 찾는 단골 꼬마관객은 어엿한 신사숙녀로 변신해 어른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질서를 잘 지키고 최고의 매너를 선보이고 있다.
반응은 뜨거웠다. 매공연마다 객석 340석이 꽉꽉 들어차고 예비석도 부족해 관람객들이 바닥에 앉아서 공연을 보기도 여러 번. 그래서 이윤희 이사장은 지난 2007년 6월 개관 이래 5년 동안 단 한번도 편하게 앉아서 공연을 본 적이 없다.
“그냥 서서 보는 게 편합니다.(하하) 엄마, 아빠 손잡고 온 어린이들이 의젓하게 앉아서 공연에 푹 빠져 있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고 뿌듯하고 공무원으로, 건설사 대표로 살면서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경험 중입니다. 이들 중에 세계적인 음악가가 나올지 누가 알겠어요? 어린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키다리아저씨’같은 현재의 삶에 만족해요.”
이 이사장의 이런 애정 덕에 삼호아트센터에는 7세 미만의 어린이가 부모가 손을 잡고 다함께 클래식 공연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방귀소리도, 하품소리도, 기침소리도 화음이 된다. 그 누구도 야단치지 않고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몇 해 전, 공연 보고 나온 한 녀석이 “아저씨, 의자가 불편해요. 자꾸 삐그덕 소리가 나서 공연에 집중이 안 돼요.”라고 말하군요. 그래서 억 대의 돈을 들여 국내 공연장 중 최고를 자랑하는 의자로 전면교체했어요.”
삼호아트센터를 찾는 40%가 7세 미만의 어린이라고 하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 관객들의 감동과 흥분으로 5년 ‘우뚝’
이윤희 이사장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삼호아트센터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공연장이다. DSD삼호건설의 창업주인 김언식 회장이 연간 10억원 가량을 후원하며 수준높은 클래식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 삼호아트센터는 그야말로 지역 사회에 환원한다는 독특한 기부방식을 실천하고 있는 새로운 모델이다.
이윤희 이사장이 1979년 수원시청 도시과에서 9급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절, 그 당시 김언식 회장은 사무실도 없는 영세한 건설업자로 공무원과 민원인 신분에서 친구가 됐다.
“오랜 인연이죠. 그 때 연을 바탕으로 지난 2007년 2월 인계동 1124번지의 건물 중부국세청 2층 강당을 리모델링해 삼호아트센터가 문을 열게 됐고 어느새 5년째가 됐어요. 회원만 2천800여명으로 삼호는 단순 공연장이 아니라 ‘아이들의 천국’이고 ‘수원시민들의 자존심’이고 생각합니다.”
관객동원의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 공연장이 비싼 티켓값을 부르며 유명한 예술인을 선호하고, 전통음악보다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흥행위주의 대작을 무대에 올리는 풍토가 만연한 가운데 삼호아트센터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클래식공연부터 전통음악, 뮤지컬, 오페라 등 시즌마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시작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챔버오케스트라’,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바리톤 우주호와 음악 친구들, 스페인 빌바오 국제 콩쿨입상자, 영국의 폴포츠 등 국내외를 넘나드는 화려한 출연진으로 매회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비싼 공연이 꼭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수원시민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는 것 만큼 기분 좋을 때가 없어요. 성실하게 준비한 공연들은 전율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는데 중국 속담에 ‘성실은 어디서나 통용되는 화폐’라는 말이 있는데 삼호아트센터 무대에 서는 출연진들의 성실한 연습과 연주, 그리고 공연을 준비하는 스텝진들의 열정이 온몸이 전율할 만한 감동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이윤희 이사장은 한 때 정치에 뜻이 있었다. 그래서 삼호아트센터가 정치적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봄, 이윤희 이사장은 돌쟁이 손녀딸 재롱이 보고 싶어 안달이 난 평범한 할아버지요, 어린이 관객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 공연장을 지키는 아저씨일뿐.
클래식 공연계가 금기시하는 8세 이하 어린이의 입장을 과감히 없앤 삼호아트센터는 5년째 관객들의 감동과 흥분을 양분으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 중심에 이윤희 이사장이 서 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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