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이다. 이른 봄이다. 꽃 필 무렵에 뚝 떨어지는 추위가 꽃샘이니, 밉지 않고 어여쁘다. 겨울의 꼬리와 봄의 머리가 씨름하는 꼴이다. 날이 갈수록 꼬리는 짧아질 테고 머리는 환하게 꽃망울을 틔울 것이다. 겨울 꼬리가 쉬 물러서지 않는 곳이 태백 사북 장성 철암이다.
1952년 흑룡을 타고 전라도 보성에서 태어난 황재형은 중앙대 미대 동료와 ‘임술년’을 창립하고 난 뒤, 이듬해 태백탄광촌으로 가족을 데리고 이주했다.
“참된 예술은 생동하는 현실의 구체적인 반영태로서 결실되고, 모순에 찬 현실의 도전을 맞받아 대결하는 탄력성 있는 응전능력에 의해서만 수확되는 열매”라는 현실주의 미학을 그는 삶 전체로 실현코자 했다. 탄광의 노동자로 살면서 그는 삶터의 눅진한 풍경과 광부들을 화면에 새겼다. 그의 미학적 리얼리티는 ‘객관화된 대상’이 아니라 ‘주관화된 실체’로부터 터졌다.
여기 사람이 있다. 2002년 여름 태백에서 새긴 동발 지기(광부)의 초상이 있다. 푸르고 검은 그림자들이 잘게 쪼개져 세월의 두께로 쌓인 주름들을 보라! 두툼하게 솟았으되 차돌처럼 단단한 광대뼈, 산세와 지세의 험난한 계곡이 빼곡히 들어차서 겨울 산하를 이룬 눈과 눈 사이의 미간(眉間), 노동의 푸른 들녘으로 펼쳐진 이마, 뒷산 돌무더기 같은 입술 언저리, 또렷하고 강렬한 눈빛, 세찬 머릿결.
그러나 삶은 고단하다. 저 노동자의 살결도 눈빛도 입술도 이제는 자본에 실린 돈 바람에 버겁다. 빠르게 쇠락한 석탄 산업의 말로처럼 지금 탄광촌의 현실도 폐허다. 자본의 욕망이 남긴 거대한 폐허. 그 폐허에 세운 카지노가 유토피아의 불꽃을 쏘아 올리고 있다. 불꽃이 탕진의 삶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을까? 황재형은 30년째 그 현실을 견디며 더 강하고 아름다운 강철 새잎을 상상한다. 노동의 예술 꽃을. 그 예술 꽃이 이른 봄의 꽃샘일 테다. 저 광부의 목덜미 아래 노오란 살결처럼.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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