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전, 시민단체 간부 A로부터 전화가 왔다. ‘권선구가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묻길래 ‘누굴 찍을거냐’고 되물었다. 후보 세 명에 대한 그 나름의 촌평이 이어졌다. 누군 이래서 안 되고, 누군 저래서 안 되고…. 그러더니 내리는 결론이 땅이 꺼져라 내 뱉는 탄식이다. “도대체 우리 권선은 왜 이 모양이죠?”
그의 말이 맞다. 권선구는 4·11 총선의 ‘버려진 땅’이다.
버림의 시작은 선거구 획정이었다. 멀쩡하던 권선구가 갑자기 쪼개졌다. 권선구의 중심인 서둔동이 팔달구로 빠져나갔다. 투표는 팔달구 후보에게 하고 행정은 권선구 관리를 받는 이상한 동네가 된 것이다. 이런 짓을 해놓고 찜찜했던지 수원지역 선거구 이름을 죄다 바꿨다. 장안·권선·팔달·영통구를 없애고 갑·을·병·정으로 바꿨다. 영문을 모르는 시민들은 지금도 ‘좋은 이름 놔두고 왜 바꾼거냐’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부아가 치민 구민들이 일어섰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잘못된 선거구 획정을 무효화해 달라’는 헌법 소원을 냈다. 2만178명이나 되는 구민들이 서명했다. 하지만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아니다. 4월 11일 선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새로 짜여진 판에 의해 굴러 가고 있다. 그렇다고 헌법재판소가 권선구민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낙하산 논란에 룸살롱 의혹까지
여기서 끝났으면 그래도 괜찮다. 찍어 달라며 눈앞에 어른거리는 후보들의 면면이 참 어이없다.
배은희 후보는 권선구에 온 지 10일쯤 됐다. 얼마 전까지 서울 용산에서 명함을 돌렸다. 용산 종합병원 설치, 남산 관광벨트 추진 등 ‘용산 작전’을 설파하던 장본인이다. 용산 참사의 위령탑을 세우겠다고도 했다. 배 후보의 이런 ‘용산 사랑’은 지금도 인터넷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랬던 배 후보가 갑자기 권선구로 내려왔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권선의 수양딸이 되겠다”다. 생뚱맞기 이를 데 없는 소리다. 과년한 처자가 남의 집에 쳐들어와 ‘내가 이 집 딸이 돼야겠다’며 자리를 펴고 누운 꼴이다.
정미경 후보는 이를 문제 삼으며 출마했다. 낙하산 공천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이는 몰라도 정 후보에겐 그럴 자격 없다. 권선구 낙하산 공천의 역사, 이 자존심 상하는 역사의 시작은 바로 그다. 4년 전 뜬금없이 등장한 그가 공천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수원 권선은 아무나 꽂아도 되더라’는 학습이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억울하다며 펄쩍 뛰지만 구민들에겐 4년 전의 데쟈뷰일뿐이다. 2008년 3월 19일, 신현태 후보가 말한 “몸이 아프신 어머니 뜻에 따라 승복하겠다”라던 우울한 기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신장용 후보의 공천은 정상적이었다. 그런데 그를 따라다니는 잡음이 메가톤급이다. 룸살롱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2010년 수원시장 경선에 출마했을 때부터 나온 소리다. 당시 수원여성회 등 19개 시민단체가 성명까지 내면서 성토했다. 신 후보는 아니라고 말한다. 세무서 자료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명된 건 아무것도 없다. “거기서 본 적 있다”는 목격담이 여전하고 “아차피 룸살롱 사장은 바지사장들 아니냐”는 비아냥도 여전하다. 동업을 했다는 인계동 성인오락실 얘기는 또 뭔지. 해명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꼭 투표 합시다’는 말이 나오나
권선구민에 차려진 4·11 밥상이란 게 이렇다.
얼굴도 모르던 후보가 유력 정당 대표로 나타나 선거판을 누비고 있다. 낙하산 공천의 업(業)을 가진 후보가 자신의 과거는 잊고 억울하다며 선거판을 누비고 있다. 입에 담기 어려운 잡음을 털어내지 못한 후보가 선거판을 누비고 있다. 어쩌다 있는 얘기거나 흔치 않은 얘기인데 권선구에는 이런 어쩌다 있거나 흔치 않은 후보가 죄다 모였다. 그리고 그 세 명이 3강(强)이다. 금배지에 가장 접근한 후보 3명이다.
선거구를 난도질 당한 지 며칠 됐다고 또 이런 밥상을 차려 내놨나. 먹으라는 밥상인가 뒤엎으라는 밥상인가.
지금도 권선구 가로수에는 ‘꼭 투표합시다’라는 선관위 현수막이 내걸려 있던데…. 참 얄궂은 표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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