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과 사찰은 같은 듯 다른 단어다. 감찰(監察)의 사전적 의미는 ‘단체의 규율과 구성원의 행동을 감독하여 살핌’이다. 의미에서 느껴지듯 정상적인 업무수행의 영역이다. 그런데 사찰은 한자에 따라 복잡해진다. 査察(사찰)로 쓸 경우의 의미는 ‘조사하여 살핌’이다. 이 뜻 속에는 어떤 불법이나 부당함도 없다. 하지만 伺察(사찰)이라고 쓸 경우는 다르다. ‘남의 행동을 몰래 엿보아 살핌’이라고 돼 있다. 몰래 엿본다는 부정적 의미가 역력하다. ▶19대 총선이 민간 사찰문제로 격랑에 빠져들었다. KBS 방송 노조가 2천619건의 사찰 문건을 폭로했다. 야권은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까지 언급하며 파상공세를 폈다. 그런데 이틀 만에 나온 청와대의 반박이 전혀 의외다. “(2천619건 가운데) 80% 이상이 참여정부 때 자행된 불법 사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등에 대한 당시 사찰은 불법사찰이 아니냐”며 맞공세를 폈다. 최초 문건을 폭로한 KBS 노조도 “문서 작성 시기를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던 점을 사과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것으로 봐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80%:20%의 비율은 대충 맞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공세를 늦출 야권이 아니다. KBS 노조는 “(참여정부 때의 문건은) 대부분 경찰의 내부 감찰이나 인사동향 등 단순 보고 문건”이라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도 “(청와대가)공식 감찰 보고 자료와 사찰을 구분하지 않은 채 국민을 혼동시키고 있다”고 반박했다. 여권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은 문재인 후보도 “참여정부 청와대와 총리실은 공직자들의 비리나 부패, 탈법이나 탈선 등 공직기강 문제에 대해서만 적법한 복무감찰을 했다”고 밝혔다. KBS 노조나 박영선 의원, 문재인 후보의 얘기를 종합하면 참여정부 시절 문건은 이명박 정부의 사찰과 다르다는 뜻이다. ▶지금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사찰이란 단어의 정의는 ‘査察(조사하여 살핌)’이 아니다. ‘남의 행동을 몰래 엿보아 살핌’이라는 ‘伺察’이다. 정상적인 감독 관찰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몰래 엿보기를 뜻한다. 그래서 여야 모두 ‘상대편은 사찰이고 우리편은 감찰’이라고 맞서는 것이다. 바야흐로 선거 결과가 국어 사전상 낱말풀이를 앞서게 되는 형국이 됐다. 야권이 이기면 참여정부 시절 문건은 감찰 내지 좋은 의미의 사찰이 되는 것이고, 여권이 이기면 참여정부 시절 문건은 나쁜 의미의 사찰이 되는 것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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