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패닉(elite panic).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독립검증위원회’의 기타자와 위원장이 내린 탄식이자 결론이다. 위원회는 사고발생 초기부터 도쿄전력 본사, 원자력 안전 및 보안원, 원자력안전위원회, 그리고 총리실 등을 독자적으로 조사 한 후 400쪽의 보고서를 지난 2월 말에 발간했다.
엘리트 패닉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는 국민보호 명분 하에 엘리트가 행하는 정보은폐 내지 정보조작을 일컫는 말이다. 보고서는 엘리트 패닉의 예로서 신속하게 방사능오염 예측 데이터를 공표하지 않은 점, 희생자와 대피범주 등 최악의 시나리오를 공개하지 않은 점을 들었다.
왜 안전제일을 내세운 일본에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인가. 일반적으로 국가가 긴급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보기술을 활용한 거대한 정보파이프와 그 공유체제의 정비가 중요하다. 그러나 인터뷰 조사에서 문제점이 밝혀진다. ‘안전대책이 불충분하다는 문제의식이 존재했다. 조직을 곤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말하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국민보호 명분하에 정보은폐
‘원자력 무라(村)’도 문제였다. 도쿄 전력 등의 유착문제가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이라는 진단이다. 정치인에 대한 경영자와 노동조합의 헌금, 각종 언론에 대한 거액의 광고비, 원자력 연구자에 대한 다액의 기부금, 낙하산 인사, 전력회사에 의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인프라 제공 등 다양한 형태로 일종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기 간 나오토 수상 등이 재해 확대를 막지 못했고, 오히려 혼란과 위기를 더 확대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반대를 무릅쓰고, 사고현장으로 가는 헬기 안에서 간 총리가 묻는다. ‘수소폭발이 일어날 수 있는가’. 동승한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은 ‘격납용기 내부는 질소로 가득 채워져 있다. 산소가 전혀 없으므로 폭발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격납용기에 문제가 생겨 수소가 유출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사고발생 후 원자력 위원회와 보안원 등이 함께 총리실에 있었지만 정보는 공유되지 않았다. 도쿄전력은 보안원에는 현지상황을 보고했지만 위원회에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지 않았다. 법률상 권한의 차이를 들어 정보를 제공하지도 공유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총리실의 공간이 부족해 전문가그룹이 회의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日 교훈 통해 우리도 되돌아봐야
보고서는 복합적 재해에 대한 매뉴얼의 불비, 위기대응에 관한 정치인과 총리실의 인식부족 등을 위기 확산의 이유로 들고 있다.
당시 2만명에 달한 사망자의 93%는 원전사고가 아니라 지진 후 해일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10만명을 넘는 주민들이 방사능 오염의 두려움 속에 피난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수십만명의 주민들은 방사능오염과 암 발생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의 원전사고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던가. 지금도 국내 원전사고가 별일 아니라는 보도 자료를 내기에 바쁘다. 보고서를 읽으면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끝이 아니라 참담한 인류적 재앙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정부가 정보은폐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솔직히 걱정되는 점도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원자력 관련자는 물론 최고 정책결정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보고서다.
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