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해외 여행을 하는 동안 스페인의 기독교 순례길을 주제로 한 영화 ‘길(the way)’을 보고는 가슴이 뭉클한 적이 있었다.
이 길은 부르고스에서 서쪽으로 성당이 있는 북부 대서양 해안까지 연결되는데 그냥 자연 상태로 있는 흙길이다. 영화는 죽은 아들의 유골을 싸들고 가면서 이 길에 뿌리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각기 인생의 행적이 다른 네 사람의 인생 역정과 서로에게 연민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그린 휴먼드라마다. 길을 걷는 동안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마지막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는 모두가 성자와 같은 마음을 가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구도의 여정을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주고 있다.
이 길을 모델로 우리도 신앙과는 관계없이 제주도의 올레길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기 위해서 제주도로 몰려간다. 또 이와 비슷한 길이 여러 곳에 생기어 호젓이 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 곳으로 가기에는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도시 속의 길을 올레길로 만들 수는 없을까?
길을 걷는 것, 이것은 아마도 지난 700만년 동안 인간으로의 진화과정에서 우리의 유전자 속에 깊이 뿌리박은 인간의 본능 중의 하나다.
걷기, 인간 생존의 기본적 행위
걷는다는 것은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로서 적절하게 바람을 느낄 수가 있어서 기분도 좋고, 먼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지고 건강을 유지하는데도 기본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 자연 속에서 진화하면서, 수 백 만년 동안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느끼던 기분이고 특히 우리 피부의 털이 옅어지기 시작하던 시기이래의 땀의 발산으로 느끼던 그 카타르시스일 것이다. 또한 멀리 볼 수 있는 것도 항상 음식을 구하러 다니던 당시 시선의 안정감을 가지게 해주는 것으로 우리가 주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필수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인간의 다른 하나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는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문명의 집합체인 오늘날 도시 속에서 사람들의 걷기 향수는 망각된 본능이거나 억압된 감성이다. 오늘날 우리의 도시는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도시나 시골이나 대부분의 신작로는 자동차를 위해서 만들어졌다. 인도가 없는 곳도 많고 차도에 의해서 끊어지는 길도 많다. 인도가 있어도 도시에서는 쓰레기와 간판 그리고 울퉁불퉁한 노면들이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인도는 행상들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거리의 간판들은 한결같이 원색적인 색깔과 공격적인 언어로 무장하여 걷는 사람들을 위축되게 만든다.
산보할 수 있는 도시 만들자
앞으로 걷기를 방해하는 도시는 몰락할 것이다. 과거에는 모든 도시들이 자동차 도로들이 들어오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은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연과 먼지 소음만 일으킬 따름이다. 그래서 쾌적한 환경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야 그 도시는 경제가 흥하고 살만한 도시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걷는 동안 도시의 모습도 보고 물건도 사고 그리고 마음에 들면 그곳에서 하루를 묵어가기도 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시는 지난 5천년 정도의 시간 속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이지만 도시형 인간들에게는 이미 유전자화 됐다.
그렇지만 인간의 본성 속에 숨어있는 걷기의 본능을 억압하는 도시는 발전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도시생활을 만들기 위해 산보하는 도시속의 올레길을 만들기 위한 ‘도시문명혁신프로젝트’라도 추진해야 할 것 같다.
배기동 전곡선사박물관장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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