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향기 따라 눈부신 봄 자락을 걸었다. 다랭이 논두렁은 잘박하게 물을 가두어 모내기 준비를 마쳤고, 쟁기로 갈아엎은 밭이랑은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낸 채 또 다른 파종을 기다렸다. 내 심전엔 무엇을 파종할까? 가파른 바위산을 오를 때 아우성치던 종적 시간은 비로소 해체되었다. 황매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철쭉 군락지답게 산등성이 아래로 다홍빛 꽃물결을 흘러내렸다. 요염한 꽃향기에 얼큰해 질 때 심적 내용이 정신 분열을 일으킨다. 안면에 거물을 치고 가는 거미, ‘몸이 아픈 스님 투병치료 모금함’ 옆에서 목탁 치는 스님, 잃어버린 안경을 찾겠다고 좌충우돌 뛰어다니는 아저씨. 나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비 탐미적으로 끌어와 정신의 복구를 조용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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