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화가’에서 세계적인 화가로 우뚝 선 인물이 있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루소다. 그는 꾸준한 준비로 전업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예술가다. 전직이 세관원이었다. 1871년부터 무려 22년 동안 파리 세관의 세금징수원으로 밥벌이를 했다.
루소가 처음 붓을 잡은 것은 1884년 마흔 살 때였다. 이때 루브르박물관에서 유명한 그림들을 베껴 그릴 수 있는 모사 허가증을 받는다. 그는 직장과 가정 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럼에도 시간을 쪼개서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그림을 그렸다. 가슴 한 켠에는 뛰어난 화가가 되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초보자 티를 겨우 벗을 무렵인 1885년, 꿈에 그리던 ‘살롱’전에 난생 처음 출품한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자 노력하는 것’(헤밍웨이) 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또 ‘나는 실험에 실패할 때마다 성공을 향해 한발 짝 한발 짝 다가가고 있다’(에디슨)는 말에 공감이라도 한 듯이 다시 캔버스와 씨름을 계속했다.
꿈을 현실로 만들려면…
이듬해인 1886년에는 ‘앙데팡당’전에 출품한다. 살롱전의 고답적인 스타일에 반기를 든 젊은 화가들이 창설한 앙데팡당전은, 루소가 새로운 그림을 선보인 단골 무대였다. 7년 동안 출품한 작품이 20점이나 된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아마추어 냄새가 풀풀 나는 루소의 그림을 조롱하거나 무시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루소가 아니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인 만큼 화가로서 자부심은 시들지 않았다.
1893년, 루소는 그림에만 전념하기 위해 세관을 그만둔다. 제 몸에 맞는 옷을 찾아 입듯이 과감하게 전업작가로 나선다.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열정은 뜨거웠지만 반응은 냉담했고, 생활마저 궁핍했다. 그런데 고진감래였다. 1905년, 뜻밖의 희소식이 날아든다. 예전에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가을 살롱전에 작가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마침내 제도권 비평가들도 그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화상들도 원시적인 동시에 몽환적인 루소의 그림을 구입해갔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강한 의지와 도전의식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 꿈은 고달픈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마음의 방부제’다. 꿈은 날마다 가슴 뛰는 삶을 선사한다.
뜨거운 열정·차분한 계획 갖고 준비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잘 나가던 경제학자에서 도예가로 변신한 사람도 있다. 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어느 경제학자는, 경제학자의 삶에 공허감과 환멸을 느낄 무렵, 운명처럼 도자기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가슴이 뛰었다. 경제학을 접고,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서 도자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도예가로 변신에 성공한다. 평생 업으로 생각했던 경제학보다 도예가로서의 생활이 훨씬 윤택하다고 했다. 도예가 이기영씨의 이야기다.
하늘은 스스로 준비하는 사람을 돕는다. 지금과 다른, 후회 없는 삶을 꿈꾼다면 계획을 세워서 조금씩 준비할 일이다. 인생은 정직하다. 노력하는 사람에겐 열매를 주고 머뭇거리는 사람에겐 후회를 안겨준다. 꿈을 향해 묵묵히 준비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CEO다.
정민영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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