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호성의 현역 시절 별명은 ’장사’다. 타고난 힘과 관련된 일화들이 많다. 라커룸에서 튀어나온 못을 손가락으로 눌러 박았다는 얘기도 있고, 홈런 볼이 무등야구장을 넘어 무등수영장 기둥까지 날아갔다는 전설도 있다. 해태 타이거스 입단 첫해부터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호성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힘 좋고, 야구 잘하던 선수로 기억됐다. 2001년에는 프로야구선수협의회 회장도 맡았다. ‘후배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꿈’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2008년 2월, 서울 마포에서 부녀자 일가족 4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마포 일가족 살인 사건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용의자가 전직 프로야구 선수라는 소문이 퍼졌다. 이호성이었다. 20여일뒤, 그는 한남대교 강변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옛날이 좋았다”는 유서가 발견됐다. 이호성의 비극은 경마에서 시작됐다. 연매출 70~80억을 넘나들던 웨딩 사업을 버리고 ‘한 방’을 노릴 수 있는 경마사업으로 눈을 돌린게 화근이었다. 수십억원의 사채를 끌어쓴 뒤 경마장 설치가 늦어지면서 빚더미에 앉았다. 2005년에는 사기 혐의로 구속까지 됐다. 마지막 순간에도 이호성에겐 7건의 사기혐의가 씌워져 있었다.
▶김동현(28)은 축구 유망주였다. 188㎝ 키에 몸무게 85㎏이던 그는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차범근, 최순호, 황선홍으로 이러지는 대형(큰 체형)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을 선수였다. 2002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베스트 11과 최우수 선수를 동시에 차지했다. 2004년 최고 명문 수원 삼성에 입단하며 화려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상무에 입대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축구계를 발칵 뒤집었던 승부조작에 연루됐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으며 그의 축구 인생도 막을 내렸다.
▶추락의 끝은 거기가 아니었다. 빚을 갚기 위해 납치 강도로 나섰다. 26일 오전 2시 20분쯤 훔친 차량을 이용해 청담동 고급빌라 지하주차장으로 침입했다. 피해자 박모(45·여)를 칼로 위협해 납치했다. 반항하는 박씨를 칼로 위협해 차량을 빼앗고 납치했다. 피해자의 신고로 20여분만에 검거됐다. 축구 유망주에서 승부조작범으로, 다시 납치 강도범으로 추락했다. 김동현의 구속과 이호성의 자살, 두 스포츠 스타의 비극은 모두 ‘내기’에서 시작됐다.
김종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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