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섭 칼럼] 중년 캥거루족, 당신의 미래는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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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천명관씨의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은 중년 캥거루족의 이야기다.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데 실패하고 20여 년만에 다시 엄마 품으로 모인 평균 나이 49세 삼남매의 좌충우돌 생존기를 담아냈다.

큰아들은 강간 등 전과 5범에 120㎏에 육박하는 거구다. 유일하게 대학을 나와 나름대로 기대주였던 둘째아들은 첫 영화를 시원하게 말아먹고, 영화판과 아내에게 버림받아 알코올중독자가 됐다. 예쁘장한 막내딸은 물장사를 거쳐 이 남자 저 남자와 바람을 피우다 딸 하나 딸린 이혼녀가 됐다. ‘고령화 가족’은 ‘후줄근한 중년’이 되어 가난한 엄마에게 얹혀살 수밖에 없는 삼남매와 그들을 거두는 엄마의 이야기다. 소설에선 삶의 낙오자로 전락한 중년 캥거루족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캥거루족’이란 말이 유행이다. 캥거루족은 대학을 졸업한 후 자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취직을 하지 않거나 직업을 가져도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젊은 층을 일컫는다.

용어만 다를 뿐, 캥거루족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에서는 직장없이 부모에게 의탁해 살아가는 젊은 층을 이도 저도 아닌, 중간(사이)에 낀 세대라 해서 트윅스터(Twixter)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부모의 퇴직금을 축내는 키퍼스(Kippers), 독일에서는 집에 눌러앉아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네스트호커(Nesthocker), 캐나다에서는 직장없이 떠돌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부메랑 키즈(Boomerang kids)로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독립할 나이가 된 아들을 집에서 내보내려는 부모와 아들 사이의 갈등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 ‘탕기(Tanguy)’의 제목을 그대로 따서 탕기로 부른다.

노부모에 얹혀사는 30~40대 급증

이런 신조어를 보면 나이 든 부모에게 얹혀 사는 성인 자녀는 세계적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미국에서는 성인 남성 5명 중 1명이 캥거루족이라고 한다. 2011년 25~34세 남성 가운데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은 19%로, 2005년보다 5%p나 높아졌다. 일본도 30∼40대 캥거루족이 300만명에 달한다는 조사다. 인구의 16% 수준이다. 35~45세 연령층 6명 가운데 1명 꼴이라 하니 중년 캥거루족이 심각한 사회문제다. 영국에서는 불황 여파로 실직한 중년 자녀들이 다시 노부모와 합쳐 살기를 원하면서 노인들 사이에 집 증축 붐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도 부모에 얹혀사는 30∼40대가 급증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10년 새 무려 두배로 증가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직업조차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고달픈 삶을 반영하는 듯하다.

부모는 늙어가는데 미래는 불투명

서울시에 따르면 가구주인 부모와 동거하는 30∼49세 자녀가 2000년 25만3천명에서 2010년 48만4천명으로 91%나 늘었다. 이들이 함께 사는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자녀가 경제적 이유로 독립생활이 불가능’(29.0%)하거나 ‘손자녀 양육 등 자녀의 가사를 돕기 위해’(10.5%)라는 답변이 전체의 39.5%를 차지했다.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모가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다.

30∼40대 캥거루족의 증가는 청년실업과 무관치 않다. 노동시장에 진입할 시기를 놓치면 갈수록 노동시장에서 배제된다. 학교 졸업 후 제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급기야 결혼까지 포기하며 30∼40대 캥거루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청년실업의 현주소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경제적 독립이 힘든 사회는 절망의 사회다. 자립하지 못한 미혼자가 증가하면 저출산이 가중되고 노동인구는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갈수록 노동의 양과 질은 떨어져 국가의 성장동력이 위협받게 된다. 빈곤 계층의 확대는 사회 불안을 조장할 수도 있다. 캥거루족의 증가를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중년 캥거루족의 증가는 일자리 감소와 경제 위기라는 그늘이 빚어낸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중년 캥거루족이 의존하는 부모는 노후준비조차 부실해 삶이 버거운 세대다. 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이들에게 의지할 수 있을까. 젊은 세대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부모세대의 미래는 불안한 대한민국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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