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기업의 위기관리

“결국 리스크와 함께 생존하는 방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열린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사장단회의에서 최근의 경제위기는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일본 대지진, 유럽 금융위기, 저축은행 사태 등 계속 이어지는 위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은 맹수들이 우글거리고, 천재지변이 빈번한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초식동물과도 같은 처지이다.

국내외적으로 자고 일어나면 기업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큰 사건이 기업 외부 또는 내부에서 종종 발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타이코, 엔론 등 세계적 기업이 윤리경영, 재무투명성 등의 위기로 파산한 바 있고, 233년 역사를 자랑하던 영국의 베어링 사는 한 직원의 파생상품 거래 실수로 파산하였다. 국내에서도 페놀 사건, 공업용 우지 파동, 불량만두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조류독감, 대우그룹 신용 추락 등의 위기가 닥쳐 잘나가던 기업을 어려움에 처하게 하거나 아주 문을 닫도록 한 바 있었다. IMF 사태 때는 국내 20대 대기업 중 반 이상이 소유권이 변동되거나 사라진 바 있다. 기업의 위기 자체를 예방하거나 피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위기는 기업의 개별적인 노력만으로는 원인을 제거하거나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 따라서 사전에 대처 능력을 갖추어 위기가 발생하여도 극복하는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스크와 함께 생존 방법 배워야

잘 준비된 위기관리 체제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사례도 많다. 9·11 테러로 본사가 완전히 파괴된 모건, 스탠리, 딘위터의 경우는 사전에 준비된 17명 위기관리팀의 활약으로 테러 공격 4일 후인 다음 월요일부터 정상 영업을 가능하게 하여 물리적으로 회사가 큰 타격을 입어도 거대 투자금융회사가 꿋꿋이 살아남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 발생 시, 뉴올리언스 지역에서 월마트의 대응은 자사의 위기에만 대처한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존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는 훌륭한 사회적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또한, 거버 이유식, 타이레놀 같은 상품들에 대한 독극물 협박사건에 대해서, 관련 기업들의 잘 준비된 위기관리 시스템은 위기를 기회로 돌려, 위기 이후 시장 지배력이 오히려 개선되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기업의 위기관리에 관해 금융업은 재무적 위험, 제조업은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위험을 중심으로 각기 대응해왔다. 그러나 최근 방어적인 위기 관리체제에서 탈피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내부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기업의 다른 관리체계와 결합하는 ‘전사적 위기관리 체제(ERM: Enterprise Risk Management)’가 등장하고 있다.

적극적 위기관리…위기가 기회로

닥쳐오는 위기에 대해 단편적이고 임기응변적인 대응으로는 불안한 시대이므로 우리 기업들도 이제 ERM을 갖추어 부분적, 담당자 중심 위기관리에서 전사적인 위기관리를 강조하여야 한다. 또한, 사후 대응적·방어적 관리에서 사전 예방적·공격적 위기관리를 강조하고, 유형적 자산관리 이상으로(지적재산권, 소비자 신뢰, 파트너 가치 등) 무형적 자산관리의 중요성을 중시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자사에 적합한 체계적 위험요인을 발굴하고, KRI(Key Risk Index)를 도출하고, 조기 경보 시스템을 준비하는 등 체계적인 위기관리 프로세스를 정립하여야 할 것이다.

전사적 위기관리 체계는 있으면 좋은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기업 생존을 위해 꼭 갖추어야 하는 필수 역량이 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사적 위기관리 체제를 갖추어, 넓은 초원 위를 자신 있게 질주하는 표범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희상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