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수산시장에서 37년 동안 젓갈장사를 하고 있는 유양선씨(79)는 ‘젓갈 할머니’, ‘기부 할머니’로 불린다. 1983년부터 현재까지 23억9천여만원어치의 부동산과 현금, 서적 등을 전국 초·중·고·대학교와 양로원, 보육원 등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했다. 각급 학교에 기증한 도서만 3억원이 넘는다. 19억4천만원의 대학발전기금을 기부받은 한서대는 ‘유양선 장학회’를 설립했다.
그의 첫 기부는 중학교에 입학할 학비가 없던 소년에게 준 장학금이다. 그 소년은 이제 학업을 마치고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이 됐다. 또 다른 여학생은 간호대를 마치고 서울대병원에 취직했다.
유씨는 3년 전 위암수술과 무릎수술을 받았지만 오늘도 ‘충남상회’에서 새벽 4시부터 불편한 몸을 움직인다. 유씨는 “가난 탓에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됐다”며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유씨는 국민추천포상 대상자로 선정돼 7월초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다. 행정안전부는 역경 속에서도 묵묵히 선행을 실천해온 평범한 이들에게 국민의 추천을 받아 훈·포장을 해주는 ‘국민추천포상’ 대상자 24명을 발표했다. 국민훈장(2명), 국민포장(8명), 대통령표창(8명), 국무총리표창(6명) 등이다. 국민추천포상 제도는 올해가 두 번째다.
나눔의 삶 실천하는 작은 영웅들
28년간 홀로 염소를 키워 모은 1억원을 함양 안의고교에 기부한 ‘염소 할머니’ 정갑연씨(79)는 국민포장을 받는다. 정씨는 작업복 서너벌이 가진 옷의 전부일 만큼 자신에겐 인색했다. 염소 먹이 나뭇잎을 뜯으러 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팔이 부러졌을 때도 병원비를 아끼려고 나뭇가지로 부목을 했다.
‘134㎝의 작은 거인’ 김해영씨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는다. 척추 장애인인 김씨는 초등학교만 마치고 14살의 어린 나이에 식모살이로 가족을 부양했다. 그러면서 대입검정고시까지 합격했다. 공장에서 배운 편물기술을 갈고 닦아 1985년 세계 장애인기능경기대회 기계편물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 1990년 아프리카 보츠와나로 건너가 14년간 주민들에게 편물기술을 전수했다.
4년 전부터 구두를 닦아 매년 430만원씩 가난한 이웃을 도와 대통령 표창을 받는 김정하 목사는 2010년 루게릭병에 걸렸다. 그는 2년 전부터 교회 2층 입구에 쌀통을 놓고 항상 쌀을 채워 누구나 퍼갈 수 있게 했다.
설악산 지게꾼 임기종씨도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그는 한 번 등짐을 운반할 때마다 1만원을 번다. 그렇게 모은 돈을 1994년부터 사회복지시설과 특수학교에 기부해 왔다. 지금까지 기부한 돈이 모두 2천여만원이다.
사회의 등불, 우리도 이들처럼
전셋집에 살면서 장애 아동 5명을 포함해 8명을 입양해 기른 ‘여덟아이 엄마’ 강수숙씨, 태평양을 오가며 한국 미혼모를 도운 ‘미혼모 대부’ 리처드 보아스씨(안과의사),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숨진 고(故) 민평기 상사의 유족보상금 중 1억원을 방위성금으로 기탁한 윤청자씨, 13년간 실직자와 노숙인 500명에게 보일러 기술을 전수해온 ‘보일러 대부’ 이영수씨, 검정고시 합격자 1천800여명을 배출한 인천 최초 야학 설립자 김형중씨, 부산 해운대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익사한 고(故) 신상봉씨 등도 국민들이 훈장을 달아준다.
국민의 훈장을 받는 이들은 모두 사회를 비추는 등불같은 인물이다. 높은 자리에 있거나 돈이 많거나 유명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나눔의 삶을 실천한 우리 이웃들이다.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거나 대가를 바라지않고 묵묵히 사랑을 나눠 온 보통사람들이다.
수상자들은 형편이 좋아 남을 돕는 게 아니었다. 눈물로 번 돈을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다.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것을 상당부분 희생했다. 역경 속에서도 선행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의 삶은 아름답고 더 감동적이다.
유양선씨 말대로 ‘자다가도 죽는게 사람’이다. 쌓아두면 뭐할거고, 몸을 아껴 뭐할거며, 재능을 묵혀 뭐할건가. 나누는 삶, 의미있는 일, 나부터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보자.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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