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정치 ‘중도’와 종교 ‘중도’의 닮음과 다름

근래 우리나라 정치인들 사이에서 ‘중도주의(中道主義)’를 내세우는 것이 무슨 유행처럼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것으로 거론되는 이른바 대선주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래 유행하는 중도주의는 우파(보수)와 좌파(혁신) 중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이념을 나타내는 것이고 더불어 합리와 균형을 강조하는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과 대립적인 이념이라 하더라도 공동체의 이익과 유지를 위해서 수용할 것이 있다면 수용하고, 타협할 것이 있다면 타협한다는 것이니 일단 모양새는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중도주의를 박쥐와 양다리 걸치기에 빗대어서 비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중도주의는 내용적으로 보면 자기 정체성이 없이 시류나 인기에 영합하려는 정치 행태로서 기회주의를 그럴싸하게 포장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흔히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중도’가 유교의 ‘중용(中庸)’이나 불교의 ‘중도(中道)’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유교에서 중용은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고대 중국의 제왕 요·순·우·탕 시대의 정치원리를 가리키기도 하고 ‘이상적 인간형’인 군자가 갖추어야 할 사유와 수양의 방법을 가리키기도 하는 개념입니다.

중용에서 ‘중’은 희로애락 등의 감정이 생겨나기 이전이라서 치우치지도 않고 어디에 의지하지도 않으며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내면의 상태로서 천하의 근본도리(天下之大本)을 뜻하고 ‘용’은 ‘항상 변함이 없음(平常)’, ‘이미 마음에 자리 잡은 ‘중’이 바뀌지 않도록 함(不易日庸)’ 등을 뜻합니다.

또 중용은 상황에 맞추어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隨時以處中也). 이는 상황에 따라 중심을 바꾸라는 의미가 아니라 천하의 근본도리를 자기중심으로 삼아 변화하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라는 뜻입니다.

다음은 불교의 ‘중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중도는 깨달음에 이르고 불국정토를 이루는 바른 길에 대한 제시입니다. 중도의 원리는 쌍차쌍조 또는 차조동시(遮照同時), ‘이것과 저것이 서로 다르다는 생각을 버리면 이것과 저것은 그 본성(本性)대로 불이(不二)임이 드러난다’는 것으로 선입견 또는 편견을 갖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볼 것을 강조합니다. ‘있는 그대로’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모든 중생이 미완의 부처이고 세상의 모든 원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 없기 때문이며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이 독자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관관계에 의해서 생성되고 유지되며 소멸되는 연기(緣起)의 원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교의 ‘중도’와 유교의 ‘중용’은 차이가 있지만 ‘치우치지 아니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비슷하기로는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중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불교와 유교가 ‘중심’과 이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강조하는 반면 정치인들은 ‘중립과 중간’ 그리고 이에 위치하는 모양새 갖추기를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정치인이 중립인 태도를 갖고 중간자의 입장에서 정치를 하는 일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중립과 중간이 원칙이 없이 모양새 갖추기에 그친다면 이는 시류와 인기에 편승하는 정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간 우리나라 정치는 고무줄 잣대와 빌 공(空)자 공약으로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다시 이런 실망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주의’라는 미사여구에 현혹되거나 유명세와 인기에 막연한 기대를 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후보자들의 사람 됨됨이는 물론 그간에 보여준 정치적 소신과 경륜, 그리고 업적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지혜가 발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 담 부천 석왕사 주지·불교방송 이사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