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호 칼럼] 왜 ‘김영란 法’을 두려워 하는가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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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의 부정·비리는 중죄다. 당연히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안)’은 하루라도 빨리 시행돼야 한다. 정부 부처, 산하기관, 지방자치단체, 국영기업체, 정치권까지 온전한 곳이 별로 없을 지경으로 썩을대로 썩었기 때문이다. 연간 무역 1조 달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라고 자랑하지만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우리나라 공직자의 청렴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최하위다.

일명 ‘김영란 法’으로도 통칭되는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은 공직자가 청탁을 받은 경우 반드시 그 내용을 신고하도록 하고, 직무 관련자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처벌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즉 부정청탁을 받았다고 판단하면 공직자는 이를 즉시 소속 기관장 등에게 서면으로 신고해야 한다.

부정청탁자가 이해당사자 또는 제3자인 경우에는 과태료, 공직자인 경우엔 형벌의 대상이 된다. 공직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청탁을 금지하고, 직무상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초강력 ‘청백리법’인 셈이다.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가 공무원에게 지역구 민원이나 인사 청탁 등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게 눈에 띈다.

고질적 ‘청탁’부터 척결돼야

그런데 ‘김영란법’ 국회 상정을 앞두고 ‘너무 엄격하다’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청탁과 민원의 구분이 모호하고, 건전한 의사소통을 위한 만남까지 막을 수 없다는 궤변을 늘어 놓는다. 지난해 6월14일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서 ‘공직자의 청탁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을 제안했을 때도 국무위원들의 반대발언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공직자가 받는 모든 청탁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보고토록 하고, 직위를 이용해 특혜를 주면 금품을 받지 않았어도 처벌한다는 규정을 담았다. 공직사회의 부패와 비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전관예우 폐해 시정에 역점을 두었다. 하지만 국무위원들이 발목을 잡았다. 대통령 주재하의 국무회의에서 이런 반론이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무릇 공직자가 지향해야 할 ‘공공성’은 자신의 사적 이익을 벗어나 전체를 배려할 수 있는 성숙한 능력을 의미한다. 공공성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하여 반드시 확보돼야 할 것이 ‘윤리’다. 공직자의 윤리는 자신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기본적 덕성이다. 공직자가 국민이 아닌 자신을 대리하면 공직의 의미는 상실되며, 공직이라는 이름도 붙이지 말아야 한다.

국회의 입법 과정이 걱정된다

공공성을 무너뜨리는 주 원인은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이다. 이해충돌은 공직자 스스로의 사익 추구에, 부당한 청탁에 의해 발생한다.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것은 윤리를 바로 세우는 것이며, 부패를 예방하는 길이다. OECD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이해충돌 방지제도를 시행했다.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 시절인 1962년에 ‘뇌물 및 이해충돌 방지법’을 제정해 분산돼 있었던 이해충돌방지 관련 규정들을 정리했다. 미국 의회는 이 법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법으로 평가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부터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을 추진해온 연유다.

공직윤리 확보를 위한 법이 없진 않지만 그동안 역부족이었던 점에서 최초 여성 대법관 출신의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은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 이 법은 뿌리 깊은 사회구조 및 그에 의해 형성된 개인의 사고와 행태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모든 공직자와 시민이 청탁과 금품 수수 등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윤리적 기준이 내면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일부 고위 공직자의 이중적 행태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입법을 지연시킬 우려가 농후한 점이다. ‘김영란법’을 두려워하는 자는 공직자의 자격이 없다. 공직사회를 떠나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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