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얏나무 아래에서라도 갓끈을 고칠 필요가 있으면 기꺼이 고쳐 매겠다.” 시청 기자실을 찾은 A시장이 작심한 듯 입을 열었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검사가 다음날 검찰 기자에게 발끈합니다. “좋다. 갓끈을 고쳐 맸는지 자두를 땄는지 뒤져 보겠다.” 그때부터 수사는 파상공세로 갔습니다. ‘대형유통매장 입점 과정의 비리 내사’라던 애초 범위를 뛰어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 개인업체 입출금 전표와 시청 문화행사의 모든 내역서가 압수되고 관련자들이 줄줄이 소환됐습니다.
그러기를 달포. 시청 주변에서는 ‘왜 주위까지 힘들게 만드느냐’는 원성이 커져갔습니다. ‘당당함’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온 겁니다. 결국 A시장의 선택은 ‘정치’였습니다. 어느 하루, A시장의 공식 일정이 모두 비워졌습니다. 기자들 사이에는 ‘시장이 서울에 갔다더라’는 말만 나돌았습니다. 훗날 시장은 기자에게 ‘옛날 같았으면 근처도 가지 못했을 곳을 다녀왔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A시장의 내사는 종결됐습니다. 하지만 ‘오얏나무 논쟁’의 앙금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1년여 뒤 A시장은 ‘황당한 혐의’로 구속됩니다.
평범한 속담이 비범한 진리로 머리에 박힌 사건이었습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매는 것은 용자(勇者)의 행동도, 현자(賢者)의 행동도 아니라는.
오해 증폭 시키는 공항지분매각
대통령께 꺼내는 얘기치고는 너무 지엽적인 얘기라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정치가 흘러가는 공식은 거개가 비슷합니다. 되레 국가적 큰일일수록 보편적 순리에 더 정확히 맞아가던 예가 수도 없습니다. 시행횟수가 커질수록 절대값에 가까워진다는 통계학적 공식과도 맞닿아 있는 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16년 전 A시장의 얘기를 경기도 구석의 촌 동네 얘기로 흘려 넘길 건 아니라고 봅니다.
인천국제공항 지분 매각 논란 얘깁니다. 반대가 많습니다. 야당이나 일부 진보단체만의 반대가 아닙니다. 여당의 반대도 많고, 보수단체의 우려도 있습니다. 반대 논리의 출발은 간단합니다. 인천공항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는 명분이 전혀 와닿지 않는 겁니다. 공기업 선진화 얘기도 그렇고, 정부 예산 충당 계획도 그렇고, 경영권 확보 장담도 그렇습니다.
공적 자본은 후진스럽고 민간 자본은 선진스럽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산 충당 계획도 7개월여 남은 지금 정부와는 상관없어 보입니다. 시간상 현 정부 국고에 입금될 돈은 아니죠. 결국 다음 정권이 쓰게 될 돈일텐데…. 다음 정권의 예비 주인들이 하나같이 ‘돈 필요 없으니 팔지 마라’고 한답니다. ‘외국 자본이 들어와도 51%는 정부가 쥐고 있으니 아무 문제 없다’는 장담도 마찬가집니다. ‘론스타’니 ‘먹튀’니 ‘검은 머리 한국인’이니 하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국민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정리해줘야 할때
여론이 이런데도 정부나 정치권의 몇몇 인사들은 계속해서 ‘추진강행’을 얘기합니다. 아마도 명분이 확실하고 소신이 떳떳하다고 생각해서겠죠. 하지만 이런 밀어붙이기가 빚어가는 결과가 황당합니다. 반대 집단의 덩어리를 더 키워주고 있고, 엉뚱한 의혹을 재생산하는 숙주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야당 대표가 얘기한 ‘10조원에 달하는 공항 유보지 500만평 관련 의혹’은 개중 점잖은 루머에 속합니다.
대통령의 뜻은 모릅니다. ‘팔아라, 말아라’는 언급이 보도된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많은 국민이 대통령을 연결하려 합니다. 말은 홍준표 대표가 했고 박재완 장관이 했는데도 그럽니다. 여기서 그치면 다행인데 한 발 더 나가 보려는 세력들도 있습니다. 갖가지 의혹에 대통령을 연관지어 보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걱정인 겁니다. 반대가 많아져 자신감이 생기면 움츠렸던 스캔들은 불나방 널뛰듯이 이리 저리로 튀어 다니는 게 정치권의 생리이니까요.
16년 전, A시장의 깨끗함은 무죄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사이 A시장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때의 교훈이 이렇습니다. ‘선비의 조건은 자두를 훔치지 않아야 하는 주관적 도덕성에 그치지 않는다. 자두를 따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 된다는 객관적 도덕성까지 갖춰야 한다.’
이제 공항 지분 매각 논란을 끝내야 할 땝니다. 자두 밭에 뛰어들어 벌이는 애매모호한 갓끈 고치기를 중단시켜야 할 땝니다. 대통령만이 할 수 있고 대통령이 해야 할 일입니다. 인천공항 지분 매각. 안하길 바라는게 이곳의 여론입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이슈&토크 참여하기 = 대통령께! “지금은 오얏나무 아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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