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호 칼럼] ‘임금님의 밥상’과 ‘못 펴기’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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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구연가이기도 한 전영택 시인이 ‘임금님의 밥상’이라는 전래동화 구연을 시작했다. 자작시 ‘넝쿨 장미’를 낭송한 뒤였다. 지난 19일 비 개인 저녁나절 수원詩낭송가협회(회장 진순분)가 만석공원 호반에서 개최한 ‘7월 시 낭송회’ 자리에서였다.

교직에서 은퇴한 전 시인은 고희를 앞두고도 소년처럼 “옛날에 쌀밥을 좋아하는 임금님이 있었어요”하고 동화를 구연했다. 호반길을 산책하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귀를 열었다. 어린이들은 호반 벤치에 앉아 구연 동화를 들었다.

쌀밥을 유난히 좋아한 임금이 있었다. 임금은 주방에 들러 주방장에게 매일 밥을 맛있게 짓는 노고를 칭찬하고 비법을 물었다. 주방장은 때 마다 품질 좋은 쌀을 가져다주는 쌀가게 주인 덕분이라고 겸손해 하였다. 임금은 쌀가게 주인을 찾아가 자신의 금반지를 선물로 주었다.

농사 풍년은 하늘 덕분이지요

그러나 쌀가게 주인은 금반지 받기를 사양하면서 “벼를 잘 찧어준 방앗간 덕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방앗간 주인은 “해마다 쌀 농사를 잘 짓는 농부 덕분”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임금은 농부를 찾아 나섰다. 뜨거운 여름 햇볕도 아랑곳없이 구술땀을 흘리며 여름논 김을 매는 농부를 들판에서 만났다.

임금은 농부와 논둑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길 나누었다. 임금은 신분을 밝히고 지난해의 가뭄은 나라 살림을 책임 맡은 임금이 부덕한 탓이라고 사과하며 농부의 거친 두손을 어루만졌다. 농사를 잘 지어 온 나라 백성이 배불리 먹도록 애쓴 일을 치하하며 손가락에 낀 금반지를 빼 ‘고마움에 대한 작은 표시’라며 농부의 손에 쥐어 주었다. 농부는 극구 사양했다. “쌀 농사 풍년은 하늘 덕분이지요, 적당한 때에 비를 내리시고 가을이면 곡식알이 잘 영글도록 따뜻한 햇볕을 주시는 하늘 덕분입니다”라며 하늘을 칭송했다.

자신을 스스로 낮추며 다른 사람에게 공덕을 돌리는 주방장, 쌀가게·방앗간 주인, 농부의 마음을 읽고 임금은 선정(善政)에 더욱 정성을 기울였다.

두드리면 바르게 설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에 이런 임금같은 대통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영택 시인의 재밌는 동화구연이 끝나자 구경하던 시민들이 박수 갈채를 보냈다.

임애월 시인이 안동 출신 故 임병호 시인(1947~2003)의 시 ‘못 펴기’로 뒤를 이었다.

“바르게 살라 바르게 살라 / 알몸 마루 끝에 내세워져 / 매를 맞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 구월 장마의 / 건듯건듯 부는 바람 받으며 / 공기 놓친 공사장 흙투성이 속의 / 녹슬고 비뚤어진 시대의 / 굽은 못을 줍는다 / 언제부터인가 / 금기시 된 것은 구석진 험난한 곳에 / 검게 그을은 노동의 실체이다 / 힘들고 투박지게 빚은 것일수록 / 이렇듯 거칠게 버려져야 한다 / 마구 뚫려 쏟아지는 폭우의 하늘 / 천심도 변하는 것이라 한다 / 두드리면 바르게 설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 굽은 못을 편다 / 굼뜬 장마 속에 짓이겨진 / 무심한 한 개의 못을 편다”

‘자화상’(이병숙), ‘수원의 새’(류선), ‘망초꽃’(진순분), ‘비 오는 날의 만석공원’(정명희), ‘사랑’(이홍구). ‘불혹 앞에서’(김진성) 등 낭송이 호반의 저녁을 서정으로 물들게 한 이날 시 낭송회는 시민들의 관심을 모은 게 가장 큰 효과였다. 만석공원에 산책을 나왔던 시민들은 낭송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시사성 깊은 구연 동화 ‘임금님의 밥상’과 굴절된 시대상을 비판한 ‘못 펴기’가 여운으로 남았다. 매사에 겸손해하고 사양할 줄 아는 미덕을 갖춘 국민들이 대다수인 데 반해 국민의 고충과 비탄을 외면한 채 부정·비리를 저지르고도 사과할 줄 모르는 소위 통치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동화 ‘임금님의 밥상’, “천심도 변한다”고 경종을 울린 ‘못 펴기’는 문학이 시사하는 사회성을 보여 주었다. 오만에 빠진 정치모리배들이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굽은 못을 두드려 곧게 펴면 바르게 서는 시대는 과연 올 것인가.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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