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찾아떠난여행] 대한민국의 막내둥이 독도 그 섬은 더이상 외롭지 않다

장혜준 기자의 울릉도·독도 탐방기

동경 132도, 북위 37도. 바로 독도다. 엄연히 대한민국의 영토인 이곳이 언제부턴가 욕심 많은 옆동네 사람들의 억지 주장으로 시름하고 있다.

풀 한 포기, 작은 돌멩이 하 나 그들의 설움을 들어주고 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일본땅 다케시마가 아닌 대한민국 땅 독도에 다녀왔다.

지난 6월 21~23일 2박3일간의 일정으로 한국기자협회 독도연수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개인적으로 독도와 인연이 깊다. ‘독도’라는 논술 주제로 운 좋게 경기일보에 입사했고, 기자라는 신분으로 글 속에서만 만났던 독도를 몸소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독도연수를 앞두고 몇날 며칠 동안 잠 못 이루며 손꼽아 기다리던 그 때 그 떨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울릉도, 천혜의 비경에 감탄사 연발

6월 21일, 설레임을 가득 품은 채 울릉도로 들어가기 위해 포항여객선터미널에 들어섰다. 그 곳에서 한국기자협회 독도연수 회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너울성파도가 유난히 심하던 그 날, 3시간 내내 속을 비워내던 옆 좌석 사람들과 달리 우리 일행은 아무 탈 없이 울릉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은 그야말로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1만 여명이 살고 있는 울릉도의 1일 평균 관광객수가 1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도동약수공원 언덕 끝자락에 자리 잡은 독도박물관. 박물관에는 일본이 독도 침탈을 위해 허구로 만든 시네마현 고시 제40호 등의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또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증명하는 일본 고문헌, 옛 지도 속의 독도 등을 보며 모순으로 가득한 일본인들의 모습에 가슴이 답답했다.

박물관 문을 나서자 망향봉 정상에 위치한 독도전망대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가 있었다. 맑은 날에는 울릉도에서도 독도를 볼 수 있지만 그날은 아쉽게도 흐린 날씨 탓에 보지 못하고 내일을 기약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울릉도의 별미라는 홍합밥을 먹었다. 산해진미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울릉도 청정해역에서 자란 홍합의 담백함과 자연산 산나물의 향긋함이 입 안에서 향연을 이뤘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가 밀려왔다.

괭이갈매기의 섬, 독도…생태자원의 보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독도 가는 날 아침, 예정대로라면 오전 7시30분 여객선에 올랐어야 했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았다.

대신 태하-항목 관광모노레일을 타고 울릉도의 산과 바다를 한 눈에 담는 데 만족해야 했다. 국내 10대 비경 중 하나인 대풍감 해안 절벽에서 푸른 물빛과 검은 바위들이 밀고 당기며 나아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은 서운한 맘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국물맛이 일품이었던 따개비 칼국수로 배를 채운 뒤 낮 12시50분, 드디어 독도로 가는 여객선에 올랐다. 독도를 보고 싶어 하는 간절함 때문이었는지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사나흘쯤 되는 것 같았다. 긴 시간 동안 울릉군청에서 받은 책들을 들고 독도 벼락치기를 했다.

서기 512년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하면서 우리의 영토가 됐다는 독도는 생각했던 것처럼 하나의 섬이 아니라 동도와 서도 2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자그마한 89개의 부속도서도 자리 잡고 있다.

책 속 독도가 감질날 때 쯤, 저 멀리 동도의 모습이 눈 안에 들어왔다. 오후 들어 해상상태가 좋아지면서 운 좋게 접안에 성공했고, 괭이갈매기 떼의 환영을 받으며 우리 땅 독도에 발을 내딛었다.

서울서 포항까지 5시간, 포항에서 울릉도는 뱃길로 217㎞,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87㎞. 해외여행보다 고생해서 간 우리땅 동쪽 끝, 독도. 관광객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기념촬영을 하고, 영상통화로 이곳의 아름다움을 가족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에머랄드 빛 망망대해에 우뚝 솟은 동도와 서도… 그곳엔 겨레의 사랑이 가득했다

난 이런 모습이 이상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바라보면 더 좋을텐데 왜 부두에서만 있을까. 의문은 20여분이 지난 뒤에야 풀렸다. 독도 주민과 경비대를 제외한 관광객들은 입도 제한 때문에 자신이 타고 온 배에 다시 탑승해 울릉도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자라는 특권(?)으로 그들이 떠난 뒤 독도의 유일한 주민인 김성도 이장의 보트를 타고 서도로 향했다. 서도에는 독도주민숙소 건물이 있었다. 김 이장 부부는 그 곳에 파라솔을 펴놓고 오전에 채취한 홍합을 손질하고 있었다.

독도에서의 생활이 답답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이장은 “간혹 이 곳에서 구할 수 없는 생필품이 떨어져 불편할 때도 있다”면서도 “이웃도 없는 독도지만 자연과 함께라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와 기념촬영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괭이갈매기 새끼들이 숙소 옆으로 놀러왔다. 단둘 밖에 없어 적적했던 서도에 온 외지 사람들을 구경하러 온 것 처럼 보였다. 북실북실한 털과 겁없이 다가오는 이들을 보며 본래의 자연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서도에서 출발해 해상을 따라 둘러본 독도의 풍경은 ‘우아!’라는 탄성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니 신비롭다는 말이 맞다. 자연의 이치대로 만들어진 부속도서 귀퉁이의 ‘한반도지형’을 보며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감동이 밀려왔다.

자연조차도 그들의 주인이 대한민국이길 바라는 것을 아닐까. 주민들의 식수원이라는 ‘물골’에는 태극기가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여기에 에머랄드빛 바다는 속을 훤히 들어내보이며 춤을 추고, 파도가 부딪히는 바위에는 따개비, 거북손 등 평소에 쉽게 접하지 못하는 조개류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감히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는 이곳에서 생명들이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다.

잔잔한 파도와 다소 높았던 파도를 즐기며 다시 동도로 돌아왔다. 김병헌 독도경비대장과 함께 구불구불 경사가 있는 나무계단을 따라 동도 정상에 올랐다. 탁 트인 바다와 괭이갈매기 떼의 비행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동도 정상에는 40여명의 경비대가 교대로 머무는 숙소, 순국비, 초소, ‘한국령(韓國領)’ 표지석, 등대, 헬기장 등이 있다. 아직 앳된 티가 채 가시지 않은 대원들이 물 건너온 귀한 생수를 내놓고 손님 대접을 했다. “시원한 물 드세요. 한잔 더 드릴까요?”라고 권하던 경비대원들을 대하며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켠이 뭉클했다.

우리땅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순시선 등 외부 세력의 독도 침범에 대비해 24시간 해안 경계보초를 서는 이들. 일본의 억지 주장으로 영토분쟁이 있는 것처럼 세계인들에게 인식되면서 경비대가 독도를 의무적으로 지켜야한다는 것이 참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헬기장에서 바다 저편 수평선을 감상할 때 쯤 우리를 울릉도로 데려갈 여객선이 들어왔다. 부랴부랴 나무계단을 내려가며 경비대 숙소 앞에서 삽살개 ‘지킴이’와 인사를 나눴다. 아쉬움에 하염없이 뒤를 돌아봤다. 그 곳엔 진심을 다해 손을 흔들어주는 경비대원들이 있었다. 그들을 뒤로한 채 평생을 살면서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독도에서의 소중한 4시간을 하나씩 하나씩 가슴에 담았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독도, 특히 자연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서도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동해의 한 가운데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태고의 섬 독도에는 선조들의 숨결, 천연미와 자연미를 갖춘 환경, 그리고 우리의 역사가 묻어있다. 누가 뭐래도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엄연한 우리 겨레의 소중한 영토이자, 자산인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인 나는 다케시마가 아닌 독도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국민들의 진심을 전했다. 그리고 독도는 국민들이 지켜야 하는 대한민국 영토라는 독도의 간절한 메시지를 가져왔다. 이제는 전할 일만 남았다.

글·사진 _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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