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가 독자들에게 첫 모습을 보인 것은 1988년, 88서울올림픽이 열리고 ‘지방자치법’이 제정된 해입니다. 어느새 24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제24회 서울올림픽에 앞서 열린 제22회 모스크바 올림픽은 사회주의 진영 국가만 참가하고, 제23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자본주의 진영 국가만 참가한 반쪽의 축제였지만 88서울올림픽에는 양 진영의 국가가 모두 참가했습니다. 때문에 88서울올림픽은 탈냉전의 시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화해의 장이었고, 또한 일촉즉발의 세계적 군사긴장지역인 한반도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평화의 장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우리나라가 1991년 러시아(구 소련)에 이어 1992년에는 중국과 잇달아 수교를 하는 등 사회주의 진영 국가들과 교류와 협력을 시작한 것은 바로 88서울올림픽의 역사적 의미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중단됐던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가 다시 실시되게 된 것은 빼앗긴 국민의 권리를 되찾았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지방자치법’이 제정된 후 비록 3년이 지난 1991년에 지방의회가 구성되고 1995년이 되어서야 자치단체장이 선출되는 등 미흡한 점이 있었지만 그 ‘지방자치법’은 중앙독점 권력의 분권화와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 지방의 특성화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한국의 새로운 미래전략을 배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경기일보는 화해와 평화, 자치와 분권, 지방화 등의 새로운 역사의 변화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고,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창간 23주년 기념호에서 갈등의 조화에 대한 각별한 다짐이라는 뜻의 ‘어울림 23’을 기념표어로 제시했습니다. 각기 다른 소리의 악기가 아우러져 어울림음을 내는 오케스트라처럼, 역동적 협화음의 기능을 살리는 지역사회와 국가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던 ‘어울림 23’은 안타깝게도 1년이 지난 지금 만족을 말하기가 어려운 처지입니다.
더욱 고단하고 희망을 찾기가 힘들어지는 서민들의 삶, 더욱 심해진 사회적 갈등, 되풀이되는 권력형 부패와 실망스러운 정치, 남북의 대립 격화 등으로 양심과 지성, 위민의 그 어떤 목소리도 귓등의 바람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는 것이 세상이치. 소납은 경기일보가 상황에 굴하지 말고 더욱 힘을 내어서 새벽종의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새벽종의 역할에 대해서는 우리의 역사에서 그 지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지혜 중의 하나가 원효대사의 화쟁(和諍)사상입니다. 화쟁사상은 극단을 버리고 화(和)와 쟁(諍)의 양면성(不二)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먼저 화쟁사상에서는 세상 모든 것은 일심(一心)에서 비롯되므로 모든 대립적인 이론들은 결국 평등하다고 봅니다.
소납이 경기일보에 원효대사의 화쟁사상을 권하는 이유는 사상적 위대성 말고도 경기도가 원효대사와 각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효대사에 대한 얘기 중에 ‘해골과 물’에 얽힌 내용이 있습니다. 많이 알려져 있듯 ‘원효대사가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던 중에 동굴에서 자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몹시 목이 말라 물을 마셨고 아침에 보니 그 물이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었다. 놀라서 구역질을 하던 원효는 순간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했다.’ 이런 줄거리입니다. 이 얘기에서 경기도와의 인연은 동굴의 위치와 연관이 있습니다. 동굴의 위치는 신라가 당나라와 교통하는 중요 항구의 역할을 했던 당항성(黨項城) 인근, 지금으로 보면 평택 포승과 화성 남양 인근입니다.
모쪼록 경기일보가 화해와 평화, 자치와 분권, 지방화 등에 앞장서야 하는 시절 인연과 원효대사와의 지역적 인연을 조화롭게 잘 살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경기일보 가족 여러분의 노고에 경의와 감사를 표하며 사랑과 신뢰를 보내 주시는 애독자 여러분과 함께 보다 큰 역할을 하는 언론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영담 부천 석왕사 주지·불교방송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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