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속지 마십시오!”

만나교회의 담임 목사가 된 후 참 바쁘게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해야 할 일도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습니다. 그 모든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몸에 조금씩 무리가 오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올해 여름은 건강을 회복하는 충전의 시간으로 계획했습니다.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말씀 준비도 하고,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또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바이올린 연습도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바이올린을 꺼내 들었는데 바이올린 조율부터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겨울에는 그렇게 잘 풀어지는 줄이 여름에는 습기와 온도 탓에 꽉 조여져서 풀리지가 않는 겁니다. 덕분에 조율하는데에만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바이올린은 매일 관리해 주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습도와 온도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악기입니다. 물론 바이올린을 매일 매일 관리하고 연주하면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오랫동안 연주하지 않고 묵혀두면 바이올린은 조금씩 조금씩 망가져 버립니다. 비단 악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이올린 연주실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매일 연습해야만 기량이 녹슬지 않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후반 클래식 음악계를 이끈 지휘자이자 작곡가, 연주자였던 마에스트로 레너드 번스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아내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을 속이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연습하지 않아도 내 실력은 변함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달을 연습을 쉬더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이전처럼 뛰어난 연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고 다른 사람까지도 속이려 합니다.

성경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 전 마지막 지하 감옥에서 그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당부하는 내용을 적은 편지입니다. 그 책 가운데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마지막 때가 되면 우리와 교회를 미혹케 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니 그것들에 속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속아서도 안 되지만,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이 정도는 죄도 아니야. 나보다 훨씬 큰 죄 짓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잘 살고 있어, 이 정도는 나쁜 것도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합리화시킵니다. 그러다보면 회복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고 맙니다.

매일 영적으로 점검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에 침식당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적이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배가 가라앉는 이유는 배가 물 위에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물이 배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금 괜찮다고 속으면 안 됩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가늘게 조금씩 내리는 비는 조금씩 젖어들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옷이 젖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랑비라도 계속 맞다보면 속옷까지 흠뻑 젖게 됩니다. 오늘도 영적 조율과 민감함이 필요합니다. 악한 세력에 자신도 모르게 침식 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고 교정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가을은 쉬기에도 좋지만 영적 삶을 조율하기에도 참 좋은 때인 것 같습니다. 이 가을에 영적 민감함을 가지고 스스로를 조율하며 올바른 길로 걸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김 병 삼 분당 만나교회 주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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